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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완고함을 치유받아야한다
2021-01-08 22:07:18
대한총회신학 조회수 1135

 

 

완고함 치유

 

우리는 살아가면서 잘 걸릴 수 있는 것이 ‘완고함’ 의 issue이다.

 

왜냐하면 완고함은 자기 의가 강한 사람들에게 잘 나타나는데 ‘자기 의’는 비교적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엄한 부모님들 밑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 이런 성향이 많다.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유교적이고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이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서당문화와

 

훈장선생님과 익숙한 생활을 해오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자기의’ 와 ‘완고함’ 이 많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완고함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우상숭배를 제일 패역한 죄로 여기는데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지 않는 것도 우상 숭배 죄이지만

 

골3:5절에 탐심도 우상숭배요, 삼상15:23절에 완고함도 우상숭배라 했다.

 

그러므로 이 완고함이 처리되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도, 사람들과의 관계회복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 완고함이 무엇이냐?

 

글자 그대로 완악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이다.

 

또 우리는 강퍅하다는 표현도 같이 쓴다.

 

꽂꽂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아가 강하고 틀이 강한 모습 어찌하든지 자기 것을 남에게 관철시키려고 하는 데

 

그러다가 충돌,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그리고 나면 서로 상대방 얼굴도 안 본다.

 

자아가 강한 이 모습은 자기 안에 ‘여리고 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후 10:4의 견고한 진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견고한 여리고가 무너져야 하는데 본인이 그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어서 문제이다.

 

고집은 열등감에서 나온다.

 

사실 우리가 목숨 걸어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이 내 삶에 나타나도록 하는데 걸어야 한다.

 

즉 진리가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만 목숨을 걸고 나머지는 통과 통과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고집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부정적 도구이다.

 

또한 완악함은 막3:2-5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며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은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고 또 이같은 모습에서 돌아서야만 기도응답이 있는 것인데

 

여기서 돌아섬을 우리는‘회개’ 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 회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기도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돌이킴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돌이킴은 완고함을 내려놓는 다는 것인데 먼저 사람 앞에서 자기의 꼿꼿함과 강한 주장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같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회개하고 꺾이는 것 같아도 실상은 사람 앞에서는 안 꺾기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방어기제’ 가 있다. 아담이 타락하고 난 뒤의 모습이다. 즉 ‘죄성’ 의 모습이다.

 

이것은 ‘자기 죄’를 인정 안 하는 모습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방어기제를 내려놓은 자의 모습이다.

 

‘속건제’ 의 의미를 생각해서도 방어기제는 사람과의 관계를 막는 부정적 요인이다.

 

그러므로 수평적 관계에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자기 주장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하고 사람 앞에서 인정 못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 앞에서 인정하고 갚아주는 것을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받으신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이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마디로 꺾여진 자들의 모습이다.

 

완고함을 내려놓은 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사람에게 먼저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지름길이다.

 

 

하나님에게는 하는데 사람에게는 안 한다.(?)

 

자존심 때문에.....? 그것은 이중적 신앙생활이요 기도 응답 받지 못하는 신앙생활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를 마음 아프게 하면 바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를 대적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안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까이 있는 주님의 지체를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인 것이다 .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삶의 뿌리에 지난날 받은 상처가 ‘사뭇침’ 또는 ‘한’ 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그것도 자기 성품의 문제 때문이지만 그것을 모르고 또 그것이 크게 다가왔으니까 상대방을 일단은

 

죽일 놈으로 몰아 부친다.

 

그래서 만약 그것을 용서한다면,

 

① 내가 너무 억울한 것 같고

 

② 굴복당하는 것 같고

 

③ 제일 힘든 것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감정 토설이 있은 후 억울한 이슈와 굴복의 이슈를 찾아서

 

직면하게 해서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