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전문과정의 목회자 양성 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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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과 삶에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님은 당신의 핏 값을 주고 산 자녀들이 악한 영들에게 눌려 삶을 도둑맞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창1:28의 말씀을 이루며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요19:30에 ‘다 이루었다’라고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선포하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에덴동산에서의
빼앗긴 축복을 회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또한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여전히 나의 죄의 습성은 그대로이고
옛사람의 모습 또한 그대로 인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여전히 우리 가정은 회복이 안 되고 여전히 나는 분노와 혈기와 미움이 가득한 채 짜증과 밉상과 상대에 대한
섭섭이로 가득 차 있어서 늘 관계가 실패하고 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럴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에 아직까지 마귀가 대항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마귀 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합법적으로
빌미를 타고 들어와 역사한다.
즉 똥파리가 모여드는 것은 쓰레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가 있는 한 똥파리는 합법적으로 들어와 역사한다.
이렇게 해서 똥파리가 우리 혼적인 요소에 자리를 잡으면 각종 죄의 중독이 일어나고 부부간의 이간질 영으로
역사하고 자녀와의 관계, 이웃 간의 관계가 깨어지고, 물질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결국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이 빌미를 제거해 줘야 할 것이다.
모세도 결국 혈기 한번으로 가나안 땅을 못 들어가고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그 죄 때문에
큰 아들을 잃어버리고 그 집안에 칼이 떠날 날이 없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한 번의 죄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이러한 죄 이면에는 반드시 상처가 있다.
상처와 죄는 불가분의 사이이다.
또한 상처는 무의식 속에 죄성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본인이 저지른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또는 의식하지 말도록 인도한다.
그러다보니 상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상처에 대해 부정하고 그와 연결된 죄에 대해서도
문둥병 환자처럼(전혀 뼈와 살이 썩어져도 통증을 못 느낌) 지내게 된다.
또한 눅8장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상처와 죄성은 바로 우리 심령의 가시덤불이요, 돌짝밭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처로 얼룩져 있으면 다시 말해 상처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 말씀이 땅에 떨어져 열매 맺기
힘든 심령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제거하여 옥토가 되는 심령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우리 옥토의 심령에
떨어져야 하고 그래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