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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료실 갈릴리 호수
2013-07-10 00:00:00
관리자 조회수 1349
 

갈릴리 호수의 동편에 자리 잡은 엔게브 키부츠에 동유럽 러시아의 라트비아 출신의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1920년대 이스라엘로 이민 와서   자신의 성을 ‘물고기’라는 뜻의 ‘눈’으로 바꿀 정도로 평생을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로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나이 일흔이 다 되어 은퇴할 무렵인 지난 1971년부터 그는 둘레가 66km나 되는 호수 변을 샅샅이 뒤지며 고대 항구들의 흔적을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근 20년간의 직접 발로 뛰면서 연구한 그의 업적이 1992년에 출판됐을 때 모든 이들은 갈릴리 호수에 자그마치 16군데의 고대 항구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비록 그가 유대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나아가 ‘복음서에 나타난 고기잡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세하고도 정확했다’고 그는 고백하므로서 성경의 이야기를 실제로 증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형성된 양식비평을 포함한 최근의 성경 연구방법들은 대부분 복음서 내용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수를 직접 대면했던 제자들의 기억과 기록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도 베드로와 요한이 원래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행 4:13)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부의 발견은 이들의 의구심을 부끄럽게 하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성경의 상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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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예로 당시 생선을 상당히 비싼 식품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신약 시대 지중해 지역의 기본적인 식사는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곁들인 빵과 생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했던 갈릴리 호수 변의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도 빵과 생선이었으며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생선과 고기잡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더운 지역에서 싱싱한 생선은 항상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값이 비싼 편이었습니다. 교통이 발달되지 못한 당시 생선은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잡은 즉시 가공해서 보관해야만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고 연기로 훈제를 했고 작은 생선으로는 젖을 담갔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지역의 고고학 발굴에서 이탈리아 ‘쿠메’산 생선 젖이라고 기록된 항아리의 손잡이가 출토된 적도 있습니다. 국제무역을 통해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는 생선의 값은 더욱 비쌋을 것입니다. 주후 1세기의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로마에서 훈제생선 한 수레의 가격이 ‘한 마리의 황소가 이끄는 양 100마리’와 맞먹는다고 기록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은 값비싼 상품을 취급하는 고급 상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이방인들에 비해서 이윤을 더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율법인 카슈룻트(신 14:9-10)를 지키기 위해 지중해의 이방인 어부들보다는 갈릴리 호수의 유대인 어부들이 공급하는 생선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은 예루살렘 시장에서 생선을 팔기 위해 나흘 길을 마다 않고 판로를 개척했을 것이며, 유대인 특수 때문에 호황을 누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갈릴리 호수에는 여러 군데에 항구가 발달되고 어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대표적인 생선은 베드로 고기를 비롯해서 메기, 정어리, 잉어 등입니다. 정어리는 젖을 담그는데 오늘날까지도 대량으로 잡히며 한해 어획량의 절반인 1000톤을 차지합니다. 잉어는 정어리를 미끼로 해서 낚시로 잡으며 정어리와 베드로 고기는 그물을 이용해서 잡습니다. 베드로 고기는 지느러미가 빗같이 생겼다고 해서 아랍어로 ‘무슛트’로 불리는데 길이가 40센티미터까지 자라며 어미가 수정된 알을 입에 넣은 채 치어가 될 때까지 2-3주 동안 보호하는 독특한 습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물고기는 히브리어로는 ‘물고기를 돌본다’는 의미로 ‘암눈’이라 불리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빌립은 벳세다 출신입니다. 갈릴리의 벳새다는 분봉왕 헤롯 빌립이 주후 30년경 로마식 도시 ‘율리아스’로 재건했으며 수많은 갈릴리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습니다. 자연히 생선의 수요도 늘어났을 것이고 근처의 가버나움에는 대규모 시장이 형성됐을 것입니다. 실제로 벳새다를 발굴했을 때 한 저택에서 수많은 그물추와 낚시 바늘들이 발견됐습니다. 함께 출토된 로마산 고급 수입식기들을 통해서 이 집의 주인은 어업과 관련된 부유한 상인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안드레, 빌립 등은 원래부터 헬라식 이름이며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헬라 사람들과 대화할 정도로 고급문화에 익숙한 자들이었습니다(요 12:20-21). 시몬 베드로는 전문적인 어부로서 동생 안드레는 물론이거니와 이웃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동업자로서 두 척의 배를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고기를 잡았던 선주겸 어부입니다(눅 5:10). 야고보와 요한의 집에는 일당을 받고 일하는 품꾼들도 있었습니다(막 1:19-20).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한 비교적 부유한 어부들로서 생업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지 자유 의지대로 고기잡이를 떠나 예수의 제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왜 자신의 활동 중심지를 벳새다에서 가버나움으로 옮겼을까요? 복음서에는 이 도시에 그의 처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 어업 현장에서의  사업장의 위치는 곧 경제적 이윤과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티베리아스 북쪽 5km 지점에는 신약시대의 어촌 막달라가 있는데 헬라어 지명은 ‘생선 가공공장’이라는 뜻의 타리케아(Tarichea)입니다. 좀 더 높은 이익을 올리려는 어부들은 생선을 잡은 즉시 타리케아로 수송해서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가공용으로 넘겼을 것입니다. 벳새다의 어부들은 헤롯 빌립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인 타리케아로 생선을 수송하려면 가버나움 세관에서 막중한 통관세를 지불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어업의 근거지를 가버나움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타리케아와 같은 헤롯 안티파스의 영토이기 때문에 감세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대하여 설교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적대시 하였던 바리새인들중 특히 예루사렘의 제사장들의 입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하대하는 비꼬는 말을 진실인양 할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제자라고 하는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