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워런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목사이며 '목적에 이끌리는 교회를 건립하기' 연수회의 지도자이다.
1998년 1월, 워런은 한 세미나에서 전통적 교회를 극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변형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1) 현대적 스타일의, 비(非)위협적 '구도자(求道者) 집회'가 전통적 일요일 예배를 대체해야 한다.
(2) 복장은 평상복이어야 한다.
(3)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4) 설교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똑같이, 종종 심리학과 격려적인 성경본문을 섞는 설교 후에, 자신들에 대해 좀더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오직 긍정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5) 교회의 사역들은 대중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도록,
우울증, 무절제한 식사, 불임(不姙), 동성연애자들의 가족이나 친구, 낙태 후의 일, 별거(別居) 등을 위한 후원 그룹들을 가지고 준비되어야 한다.
(6) 교리적 교훈은 일요일들에 교회 전체에게 주지 말고, 예배 시간과 별도로 소그룹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7) 실용주의적(實用主義的) 타협의 정신이 우세해야 한다(Founda- tion, 1998년 3-4월호). 그러나 이러한 세속적인 에큐메니칼 '구도자' 교회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할 지는 모르나, 그것들은 비성경적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 (Calvary Contender, 1998년 6월 15일.)
릭 워런은 '구도자 집회'의 음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음악의 가사들이 더 근래의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음악의 스타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날마다 듣는 것이어야 한다."
릭 워런의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음향시설, 밴드, 노래하는 이들과 연주 등의 오락 구성물은 어떤 세속적 록 연주회의 것과도 경쟁할 만하다.
워런은 말하기를, 교회가 해야 할 첫번째 일들 중의 하나는 '오르간을 밴드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회 찬양대의 목적은 '독창 연주자를 배경음악으로 후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찬양대로 하여금 직접 노래하게 하는 것보다 그것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90년대의 방식이다'고 하였다.
" 워런은 또 말하기를, 몰아대는 비트를 가진 큰 소리의, 쉰 목소리의 음악이 그의 회중들이 듣는 종류의 음악이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주말 집회 때 정말, 정말 소리가 크다.
나는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자 그 이유는, 어린아이 같은 대중들은 음악을 느끼기를 원하지, 단지 그것을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전통적 음악의 사용을 주장하는 것을 우상숭배의 죄와 동일 시 하였고
또 부언하기를, "모든 좋은 음악이 200년전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얇게 덮인 인종차별주의 문화적 엘리트 의식이다"라고 하였다.
(Foundation, 1998년 3-4월호; Calvary Con- tender, 1998년 6월 15일.)
팀 포터 목사는 "영적이지 않고도 성공적인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릭 워런의 방법들과 그의 책 목적에 이끌린 교회(The Purpose Driven Church)의 내용들을 검토한다.
워런의 책은 W. A. 크리스웰의 서문과 더불어 로버트 슐러, 빌 브라이트, 풀러 신학교 교수 아치볼드 하트, 그리고 연합감리교회의 에스라 얼 죤스의 찬동을 얻었다.
포터는 몇 가지 철학적 및 신학적 결점들과 기타 문제점들을 열거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장사술에 이끌린 목회 사역은 불신자의 요구에 응하므로 결국 불신앙에 이르게 될 암(癌)이다"라고 하였다. (Visitor, 1998년 8월호; Calvary Contender, 1998년 10월 1일).
1-3. 현대 교인들은 오락을 구함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시설들,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들, 그리고 오락을 위해 교회를 찾고, 신학이나 신앙사상을 위해 교회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적 사회활동(YMCA 같은)이나 종교적 록 콘서트의 혼합물을 찾고 있다(Christian News, 1999년 5월 10일).
슬프게도, 대형교회의 흥미 추구자들은 바른 교리와 거룩한 생활에 낮은 우선 순위를 준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6월 15일.)
성경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고 말씀했다(딤후 4:3).
2. 비평
그러나 이런 류의 교회 형태, 목회 형태는 심히 불성실하고 인위적이다.
우선, 정말 '열린 예배'의 형식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먼저 기도와 성경연구와 신중한 토론을 통해 목사들의 임직 서약 때 하나님 앞에서 수락했던 '예배 모범'을 먼저 고쳐야 할 것이다.
어떻게 목사들이 신앙양심의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으로 수락했던 예배 모범과 역행하는 예배 형식을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엄숙하고 질서 있게 행해지고 예배 음악들이 아름답고 안정되게 연주되는 것이 과연 합당하지 않은가?
성경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씀했다(시 96:9).
또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라고 말했고(고전 14:33),
또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빌 1:9, 10).
우리는 질서 있고 가장 아름답고 선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또 성경은 분명히 예배의 순서가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보이고 있다.
고린도전서 14:26,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런 말씀은 전통적 예배 의식이 성경적임을 보인다.
또한, 교회의 문화적 행사들은 성경의 교훈들에도, 초대 교회의 모범에도 맞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본연의 임무와 사명이 있다.
그것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일이다. 특히, 전도는 예수님 자신의 사명이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하였다.
어느 시대이든지, 교회는 오직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은 단지 개인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만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 아니고, 또한 교회 생활과 목회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인간적 생각과 지혜로 예배하거나 교회를 운영하지 말고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예배하고 목회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심히 혼란스런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지시하는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우리 모두는 성경이 보이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고 목회해야 한다.
2-1. 교회의 상업적 경영 방식(Marketing)
1999년 7월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WCF)의 한 결의문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접촉하고 '구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세속적인 상업적 경영전략들(예를 들어, 헐리우드 영화들, 록 음악)을 사용하는 일부 목사들에 대해 경고하였다.
그 결의문은 "바로 이 사람들, 특히 에드 답슨이 근본주의자들과 성경적 분리주의자들을 율법주의자들이라고 지칭한다"고 말했다.
그 결의문에 의하면, "이 상업적 경영방법론은 미국에서 빌 하이벨즈와 릭 워런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통하여 시작되었으나, 온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
그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 결의문은,
"근본주의자들은 사도행전 2:41-47의 교회예배형태를 따르고, 요한1서 2:15-17의 경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8월 1일.)
2-2. 20세기 교회 내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보이스(Voice)지 1999년 12월호의 한 글에서는 오늘날 교회들의 풍조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많은 교회들이 프로그램으로 기도를, 사람들로 능력을, 오락으로 참된 예배를, 번영으로 순수성을, 조직체적 일치로 더럽혀지지 않은 복음에 대한 충성을 대치하였다. . . .
실용주의(實用主義)가 하나님의 백성의 생각을 엄습하여 교회에서 교인수가 느는 것이 복(福)의 기준으로 간주되고 교회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취하든지 정당화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에 사람들을 포함시키려는 이 과정을 방해할 모든 것을 제거하는데 큰 강조점을 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으로 재(再)정의된다.
칭의(稱義)의 교리가 매우 교묘하게 정의됨으로써 천주교인들은 교회를 연합시키려는 노력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거룩에 대한 이해는, 사람이 생활방식 때문에 용납할 만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비난받지 않도록 조정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과 접촉함'이라는 공통적 목표가 본질적 신학 영역들에서의 교리적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일치의 기초가 된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