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가 “그만 잠깐 졸다가 잠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결국 깊이 잠들게 되어 거의 밤이 될 때까지 그의 여정은 지연되었으며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휴식을 정당하게 여기시고 쉼의 장소를 제공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휴식의 여유를 잘못 사용하게 될 때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휴식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할 때는 성경적인 원리로 일하는데, 쉼은 성경적인 원리에 벗어나서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런 휴식의 기회에 사탄의 꾀임에 빠져드는 사역자들이 자주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바로 이 점에 유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만 잠에 떨어지고 말았고, 두루마리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겉옷까지 벗어두었다가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혹의 잠에 빠져들어도, 구원까지는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잠을 깹니다. 그리고는 더 빠른 걸음으로 다시 산을 올라갑니다. 잠을 잤다는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성경적인 개혁교회’를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지금 추구하는 교회를 위해서는 약속의 말씀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열심히 교회개혁을 위해서 힘쓰는 모습입니다. 잠자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채로 교회를 개혁하고 교회생활과 봉사를 한다는 것도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자신의 이 어리석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던 길을 되돌아 오는 두 사람을 만난 이후입니다. 이들은 바로 “겁쟁이”(Timorous)와 “불신”(Mistrust)이었습니다. 국가와 국가교회를 통한 핍박과 고난을 더 이상 견디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경적으로 개혁된 교회를 이루기 위한 투쟁을 포기한 사람들에 두 유형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겁쟁이”이고, 두 번째는 “불신”입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핍박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부로부터의 유혹에 포기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일에나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특별히 성경적으로 개혁된 교회를 이루어 가는 일에 있어서도 여전합니다. 초대교회 때에 있었던 두 유형의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고, 둘째는 바로 초대교회 내부에서의 부패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는, 주인공 크리스챤도 동일하게 겁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이 겁을 없애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제공하기 위해서 찾게 되는 것이 바로 ‘두루마기’입니다. 이때에야 정신이 바로 들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자기에게 두루마기가 없는 것을 알고는 후회막급입니다. 지금까지 고난의 산을 올라왔던 그 험한 고생들이 헛수고로 돌아가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다시금 돌아가서 그 두루마기를 찾아야만 ‘시온성’에 이르러 출입증을 제시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이게 모두 상징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말씀과 동행하지 않고, 말씀에 기초하지 않는 순례의 길은, 그것 자체로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 자체로서, 시온산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개혁과 교회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하고 있는가? 나의 열심은 두루마기를 품고 있는 열심인가? 그 말씀이 가르치고 있는 성령의 감동과 감화의 역사가 내 안에 있는가? (2부에서는 크리스티아나일행이 이곳 왕자의 정자에서 ‘음료수병’을 잃어버리는데, 이것은 성령의 역사의 중요성을 잊어버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수고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혹시 하나님의 열심을 쫓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의 열심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안에 사랑은 있는가? 기쁨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첫사랑을 잊어버린 때와 장소가 어디인가? 놀랍게도, 오늘 본문 히브리서4장에서는 우리에게 남은 안식이 있다고 하면서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면서,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면서 그 말씀의 검 앞에서 우리의 모든 깊은 것을 버혀놓고 안식하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말씀 앞에 서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쉼이요, 또한 참된 개혁인 것입니다.
토론문제
1) 고난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엡3:13)
2) 고난 가운데 때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고후1:4~6)
3) 고난 가운데 위로받을 수 있는 수단은 무엇입니까?(롬8:38~39)
4) 고난 가운데 있다가 평안이 오면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까?(삼하11:1~2)
5) 성도가 근심, 걱정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되는 수단은 무엇입니까?(창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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