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크리스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길 떠날 채비를 차렸다. 그러자 이제껏 많은 광경들을 보여 주며 자상하게 설명해 주던 해석자가 “선한 크리스챤이여,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는 주님께서 늘 당신과 함께 하사 당신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가는 길목 길목마다 안내자가 되어 주시기를!”하면서 격려해 주었다. 또한 크리스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길을 떠났다.
“여기 이곳에서 난 희귀하고 유익한 많은 일을 보았노라.
즐거운 광경이나 무시무시한 광경이나 모두
내가 장차 겪게 될 많은 일에서 나를 안전하고 굳건하게
만들어 놓았도다.
내가 본 모든 일들을 늘 마음에 깊이 새겨
왜 그것들을 내게 보여 주었는지 참된 의도를 깨닫게 하소서.
오, 선하신 해석자여,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리나이다.”
지난 번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이제 해석자의 집에서 주어지는 마지막 교훈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죄의 짐’을 벗겨주는데 역사할 뿐만 아니라, 이 ‘용서받지 못하는 죄’의 최종 결과가 어떠한지를 아는 것도, 이 죄의 짐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존 번연은, 이 마지막 교훈을 보태고 있습니다[해석자의 집은 ‘지역교회’에서 배우게 되는 교훈들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훈뿐이라는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죄의 짐’의 문제와는 관계없이, 여러 가지 교훈들이 가르쳐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존 번연은, 2부에서 크리스챤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그 자녀들이 바로 이 해석자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보여줍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 크리스챤이 배웠던 이 일곱 가지 교훈만 아니라, 다양한 교훈들을 배우게 됩니다. 9개의 교훈이 첨가되는데, 이 교훈들을 음미하는 것도 천로역정을 배우는 묘미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챤은 마지막 방으로 안내됩니다. 마침 어떤 사람이 잠에서 막 깨어났는데 부들부들 손발을 떨고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직접 그 이유를 물어보라고 해서 크리스챤이 질문을 하자 그 사람은 자기가 꾼 꿈을 이야기해 줍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입니다. 이 심판의 날이 이 사람에게만 아니라, 주인공 크리스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 천로역정을 읽고 묵상하고 있는 바로 나 자신(바로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석자의 집에서 마지막으로 이 교훈이 주어지는 것은, 죄의 짐을 해결하지 못하면 바로 이런 최후의 심판 때에 어떤 자가 될 것이냐는 것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심판이 진행될 때, 구름 위로 들리워져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알곡들입니다. 하지만, 이때 “그 입구에서 몸서리쳐질 만큼 이글거리는 화염과 지독한 연기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넘쳐”나오는, “밑도 끝도 없는 지옥의 문”이 열려서 그 가운데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라지와 쭉정이와 검불”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것은 바로 이 최후의 심판을 주재하시는 분이 누구시냐는 것입니다. 존 번연은 이 사람이 꾸게 되는 꿈에서 바로 이 심판의 주재자부터 소개합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이 놀라운 속도로 날아고 있었는데(심판이 임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데 구름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수천 명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을 세례요한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눅3:16~17). 이 구절을 읽으면서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초림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초림 때, 그것도 공사역의 시작 때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르키면서 한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초림의 예수님께서 하실 일을 재림 때의 일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 주실 세례”는 분명히 오순절날 있게 될 “성령으로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가, 바로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게 되는 재림 때의 심판과 연결됩니다. 이 “성령으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은, 알곡이요, 그렇지 못한 자들은, 죽정이인 것입니다. “성령으로의 세례”는, 그러므로, 재림 때 있게 될 “최후의 심판”의 서곡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는 예수님(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의 심판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의 짐이 완전히 벗겨지는 것입니다. 나를 구속하신 예수님이 심판까지 하실 터이니, 그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이 “최후의 심판”을 가볍게 여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심판”의 주제를 경홀히 여깁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심판과는 관계가 없다는 식입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가벼울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지옥”에 대하여 가장 자주 언급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산상보훈의 결론도 바로 이 심판에 대한 것으로 끝마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마7:19),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으로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3절). 유명한 천국비유들의 결론도 이와 비슷합니다:“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13:41~42),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50절). 존 번연은 천로역정의 해석자의 집에서 받게 되는 이 마지막 교훈을 기술하면서 “최후의 심판”을 꿈꾼 어떤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건들을 통해서 교훈이 될 만한 이름을 붙여주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이름을 붙여두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의 상상입니다만,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이 글을 읽는 바로 저와 당신이 될 수도 있겠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진행될 때 나는 알곡일 것인가? 아니면 가라지일 것인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해결한 사람에게는 그 해결로서 “죄의 짐”이 등에서 벗겨질 것입니다. 심판을 막연하고 모호하게 생각하고는 나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여기거나, 막연하게만 여기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자기 등에 “죄의 짐”이란게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등의 “죄의 짐”이 굴러가 버리는 놀라운 체험을 전혀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번연은, “최후의 심판”을 꿈으로 꾼 사람의 최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채로, 해석자의 집에서의 교훈들을 끝냅니다. 이 꿈을 꾼 사람의 최후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회개하였을까요? 아니면 이 꿈을 통하여 경고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쭉정이와 껍데기로 살게 될까요?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만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존 번연은 이 천로역정을 통해서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을 읽는 자가 자기 등 위의 죄의 짐을 다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체험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저도 소원합니다.
(이 그림이 이상하지 않나요?-이어지는 강해에서 이상한 점이 밝혀집니다!)
이제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챤은, 해석자의 집을 떠납니다. 배운 것을 회상하면서 더 깊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하기도 합니다. 다음 주일에 우리는 그 놀라운 체험에 대해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토론문제
1) 모든 사람이 마지막 날에 부활해 어디로 나아갑니까?(롬14:10)
2) 숨은 곳을 찾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3) 무슨 책으로 심판이 행해집니까?(계20:12)
4) 심판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눅3:17)
5) 몸을 숨기려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계17:1)
6) 이런 증상은 무엇입니까?(히4:13)
7) 마지막 심판의 가르침이 성도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행20:15~16;히4:1)
8)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의 효과는 무엇입니까?(벧전1:13)
9) 7개의 가르침을 받고 감사한다는 것은 어떤 증거입니까?(갈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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