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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료실 천로역정강해(16):해석자의 집(6)-용서받을 수 없는 죄
2013-07-10 00:00:00
관리자 조회수 1144
용서받을 수 없는 죄
히6:4~6/마3:28~29
그는 다시 크리스챤의 손을 잡고 몹시 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안에는 쇠창살이 달린 감방이 하나 있었고 그 감방 안에 한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나이의 표정은 깊은 슬픔에 젖어 있었으며 팔짱을 낀 채 가슴을 쥐어뜯을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하고 크리스챤이 물었을 때 해석자는 직접 물어보라고 말해 주었다. 크리스챤은 그 남자에게로 다가가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 남자는 “예전에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만 이런 꼴이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크리스챤: “그렇다면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 남자: “그 전에는 나 자신은 물론 사람들도 모두 인정해 주는 훌륭한 신자였고 박식한 사람이었지요. 그 당시만 해도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고(눅8:13) 자신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기뻐하곤 했지요.
크리스챤: “그런데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그 남자: “이제는 절망의 인간이 되어 버린 채 이 쇠창살 감방 안에 갇힌 후 난 아무데도 나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 이젠 나갈 수가 없어요!”
크리스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소?”
그 남자: “항상 깨어 근신하지 못한 자(살전5:6), 세상적 정욕이 내 목을 얽매었고 나는 마침내 말씀의 빛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거역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성령을 거슬리고 슬프게 하였기 때문에 성령이 내게서 떠나 버렸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 마귀가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나를 떠나셨고 이미 내 마음이 너무나 굳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회개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지요.
이 말을 듣고 나서 크리스챤은 해석자에게 “이런 사람에게 이제는 전혀 희망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해석자는 “그에게 직접 물어보시오” 하고 대답해 주었다.
크리스챤: “이 무시무시한 절망의 감방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까?”
그 남자: “예, 이제는 전혀 없어요. 전혀 없습니다.”
크리스챤: “왜요?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은 매우 인자하시지 않습니까?”
그 남자: “나는 내 자신의 정욕을 위해 그를 새로운 십자가에 다시 한 번 못박은 죄인입니다(히6:6). 나는 그 분의 인격을 경멸했고(눅19:14) 그 분의 의로우심마저도 경멸했습니다. 또한 그 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습니다(히6:4~6; 10:28~29).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모든 언약으로부터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림으로써 결국 모든 은총을 잃고 버림받게 되었고 지금 내게 남아있는 것은 맹수가 나를 집어삼킬 듯한 위협, 확실한 심판과 원수로서 나를 태워 죽일 듯한 가혹한 분노의 위협과 두려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크리스챤: “도대체 어떤 일로 인해서 이런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그 남자: “이 세상의 정욕과 쾌락과 헛된 부귀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향유하면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얻게 되리라고 그때는 믿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무시무시한 독충들이 되어 나를 물어뜯고 삼켜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돌이킬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남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저의 회개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시며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다시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저를 이 철의 감방 안에 가두셨으니 세상의 어느 누구도 저를 쇠창살 밖으로 내 보낼 수가 없지요. 아! 영원, 영원, 영원한 고통! 영원토록 내게서 떠나지 아니할 이 무시무시한 고통들을 내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
해석자: “이 사람의 비참한 불행과 고민을 잘 기억하여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교훈으로 삼으십시오.”
크리스챤: “글쎄, 이건 너무나 무서운 일이군요! 저로 하여금 이 사람과 같이 세속적 유혹에 넘어가 비참한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제가 늘 깨어 기도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자, 선생님, 이제 제 갈 길로 떠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해석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당신께 한 가지만 더 보여 드릴게 있으니 보고서 가던 길을 떠나십시오.”
죄의 짐을 벗어버리는데,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말미암는 열정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지난 번에 묵상한 천국을 침노하는 용감한 제자의 삶이 그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죄의 짐을 벗어버리는데 있어서 더욱 결정적인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 곧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두고 미쳤다거나 바울세불이 지폈다고 하는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오늘 마가복음3장18~29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이것을 마태복음12장3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서 “인자를 거역하는 죄”가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인자를 거역하는 것”과,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을 동일하게 보는 것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곧, 인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이신 줄 알지 못하고 사람에게 하듯이 모든 죄을 짓고 모든 모독을 퍼붓는 경우에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궁금한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과연 어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이라는 면만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이심을 알면서도 영접하지 않는 죄입니다. 이런 죄가 어떤 것인지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6장4~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하는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아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보통 평범한 인간과는 특별한 분이심을 압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아서, 하늘의 신령한 세계가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지를 흘낏이라도 맛을 봅니다. “성령에 참여”하여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예언이나 방언 같은 것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보아서, 성경의 구절을 해석하고 그 진미를 맛보면서 깨닫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합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아, 죽는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도 같은 일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타락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타락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성경에서는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다양한 예들을 제시합니다. 사울왕이나 유다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예들을 고려하면서, 왜 이들이 타락하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존 번연의 천로역정입니다. 오늘 해석자의 집에서 가르쳐지는 여섯 번째 가르침이 바로 이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잘 알게 되면, 우리가 짓는 죄가 이런 죄인가 아닌가를 분별하게 되고, 죄의 짐이 굴러가게 되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먼저, 천로역정의 이 부분을 다 함께 읽읍시다).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챤은 해석자의 인도를 따라서 쇠창살에 갇혀서 절망에 부르짖는 한 사람을 보게 되고는 직접 대화를 통해서 그 사연을 알게 됩니다. 이전에는 나름대로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타락했습니다. 왜 어떻게 타락을 했습니까? 그 사람이 직접 설명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항상 깨어 근신하지 못한 자(살전5:6), 세상적 정욕이 내 목을 얽매었고 나는 마침내 말씀의 빛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거역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성령을 거슬리고 슬프게 하였기 때문에 성령이 내게서 떠나 버렸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 마귀가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나를 떠나셨고 이미 내 마음이 너무나 굳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회개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지요.” 인자하셔서 용서해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왜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이 사람이 자신이 “마침내 나는 모든 언약으로부터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림으로써 결국 모든 은총을 잃고 버림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용서받기를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지경에까지 빠져버리게 되었을까요? “이 세상의 정욕과 쾌락과 헛된 부귀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향유하면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얻게 되리라고 그때는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나, 사울왕, 유다의 경우가 모두 이것에 해당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죄가 이런 죄에 해당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무척 고민했던 사람이 바로 존 번연 자신입니다. 존 번연은 자신의 회심과정을 기록한 그의 책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에서,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게 된 이후에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섬기기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팔아 넘겨버리기”로 한 유혹에 넘어간 뒤, 그 죄가 성령을 훼방한 죄, 용서받지 못할 죄가 아닌지에 대한 오래토록 번민합니다. 자신의 죄가 바로 이런 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난 뒤에야 그는 “이제는 정말로 내 발목에서 사슬이 벗겨졌다. 고통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시험들도 다 물러갔다”고 합니다. “네 의가 하늘에 있느니라”는 음성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바로 자기의 의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내게 새롭게 입혀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들조차도”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핵심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도 죄의 짐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자꾸만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통과한 나 자신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취한 어떤 의로움에 주목하니, 온전치 못함을 발견하고는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미 나를 위하여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죄가 혹시라도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아닌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고민 때문에 더 많은 죄 가운데서 떨어집니다. 용서를 참으로 확신한다면 떨어지지 않을 죄에까지도 떨어지게 됩니다. 용서를 확신하지 못하는 자에게, 사탄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희롱하고자 하는 유혹을 심어줍니다. 죄를 지으면 용서해 주지 않느냐? 회개하면 용서해 줄터인데, 이런 죄를 못 지을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해 주셨다고 하는데 진정일까? 이런 죄를 짓고 나서 용서해주시는가 하나님을 한 번 시험해 보면서 하나님의 용서가 진정인가 테스트 한 번 해볼까?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심어줍니다. 사탄은 너무나 간교하고 교활합니다. 우리고 하여금 그래서,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까지 짓게 하려고 온갖 궤계를 부리면서 장난을 걸어옵니다. 이런 죄에 한 번 넘어가고 두 번 넘어가게 될 때 더 이상 회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택하셔서 참되게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 된 자들은 이런 죄에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유혹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 마음 속에서 단호하게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또한 넘어졌다 하면 다시 회개하여서 그런 죄악에 빠져들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극심한 죄라고 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죄가 아닌 것은, 첫째, 비록 죄악에 떨어지는 경우라도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버리지 않은 경우입니다. 둘째, 은밀하게 불신앙의 약한 모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모습을 공개적으로 공공연히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않고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회개합니다. 셋째, 스스로 회개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회개할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애쓰고 힘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비록 연약하여서 실패하고 죄 가운데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용서해 주시고, 마지막 구원에까지 이르게 해 주십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의 등에 죄의 짐에 굴러가 버리게 됩니다.
토론문제
1)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성도를 보존하는 교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타락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교리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아니면 참된 성도가 타락한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타락의 교리는 참된 성도가 타락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성도(위선자)가 타락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참된 성도에게도 경고의 가르침으로 필요하다.
2) 그 남자는 왜 이름이 없습니까?(계20:15)
3) 신앙고백만으로 은혜를 분별하는 것은 어떤 일입니까?(딛1:16)
4) 타락하는 자에게도 빛이 비췹니까?(히6:4~6)
5) 타락은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9고전10:12; 마23:27)
6) 타락의 늪으로 더욱 빠져는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히3:12~13)
7) 타락으로 빠져 드는 것이 더 깊어지는 단계는 무엇입니까?(히6:5~6)
8) 회개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호14:2)
9) 더욱 악해지는 단계는 무엇입니까?(히10:28~29)
10) 타락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행13:46)
11) 타락의 원인을 결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무엇입니까?(히12:26~17)
12) 그 남자가 회개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렘31:18)
13) 타락에 대한 가르침은 선택한 백성에게 무슨 의미입니까?(막9:24)
14) 타락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크리스챤의 반응은 어떤 것입니까?(빌2:12)
15) 그 남자가 두려워 떨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마24: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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