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보니 해석자는 크리스챤의 손을 잡고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곳의 한 쪽 벽난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 사람이 벽난로 옆에 서서 그 불길을 끄기 위해 많은 물을 끼얹고 있었으나 불은 꺼지기는 커녕 점점 더 높이 그리고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었다.
크리스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해석자: 이 불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작용하는 은총을 의미합니다. 불에 물을 끼얹어 꺼버리려고 노력하는 자는 마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은 점점 더 세차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해석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크리스챤을 데리고 벽의 뒤쪽으로 갔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손에 기름통을 들고 몰래 그러나 끊임없이 불 위에 기름을 끼얹어 주고 있었다.
크리스챤: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이지요?”
해석자: “이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이미 넣어 준 은총을 보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은총의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마귀가 아무리 은총을 없애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어도 인간의 영혼은 변함없이 자비로우신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분이 불을 보전하기 위하여 남몰래 벽 뒤에 서서 끊임없이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신 것으로 보아 한 번 악마의 속임수에 빠진 영혼에게 그 은총을 유지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
해석자의 집에서 전개되는 네 번째 가르침입니다. 존 번연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꿈 속에서 보니 해석자는 크리스챤의 손을 잡고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곳의 한 쪽 벽난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 사람이 벽난로 옆에 서서 그 불길을 끄기 위해 많은 물을 끼얹고 있었으나 불은 꺼지기는 커녕 점점 더 높이 그리고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었다.” 마귀가 은혜의 불길을 끄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불길이 꺼지지 않고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데, 그 비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스도가 그 불을 보존하기 위해서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고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주인공 크리스챤의 등에 있는 죄의 짐을 벗어버리게 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지요.
여기서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은총”, 곧 “은혜”에 대해서입니다. 앞에서 제기된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율법과 복음의 대조, 그리고 욕망과 인내의 대조였습니다. 율법의 핵심이 욕망이고 또한 복음의 핵심은 인내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욕망하는 바를 추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상 뿌리깊히 박혀있습니다. 율법은 그 욕망의 정체를 드러내고, 가능만 하다면, 그 욕망으로 인하여 좌절된 인간으로 하여금 복음을 향하도록 돕기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일종의 몽학선생과도 같습니다(갈3:24~25). 어린시절에 가르치던 가정교사같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면 그 선생은 필요없게 됩니다. 이 율법(몽학선생)을 통해서 참된 구원을 위해서는 왜 인간의 행함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느냐 하는 것을 가르침받게 됩니다. 행함으로 불가능하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 이상은 율법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때에 몽학선생과는 다른 선생이 가르쳐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가르침입니다. 행함이 불가능하다는 것만 아니라, 오직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인간 스스로는 가질 수 없음을 또한 알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을 모두 내려놓고, 인간의 공로에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율법의 핵심이 되는 욕망의 뿌리가 근원적으로 처리되는 것입니다. 물론, 뿌리를 통째로 들어내었지만, 그 잔뿌리들은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리적으로는 그 욕망의 뿌리, 죄의 뿌리가 인간의 본성에서 들어내어집니다. 뿐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소망하게 됩니다. 이때, 그 구원을 주시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달렸습니다. 인간이 소망해야 하지만 그 구원이 주어지는 것은 구원을 소망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관과 그 뜻을 따라서, 구원하실 자는 구원하고 구원하지 않으실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버려두시는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인간의 뜻과 소망이 개입되어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에게 그런 소망이 일어나게 하시고, 그 소망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편에서 전적으로 역사하셔서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를 한 마디로 “은총”이라고 합니다.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너희는 그 은혜의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에베소서2:8~9).
이런 역사가 있을 때에 사단과 그 졸개 마귀는 방해공작을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삼킬 자를 찾아서 사자같이 으르렁거리면서 인간의 영혼 속에 미혹과 거짓의 교훈을 뿌리고, 할 수만 있는 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존 번연은 그것을, 한 사람이 많은 물을 부어서 불길을 끄려고 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적은 물이 아니고, “많은 물”입니다. 마귀의 공작이 심하고 다양한 것을 암시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가짜”은총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처럼 가장할 수 있습니다(고후11:14). 사단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들처럼 가장합니다(15절). 그래서, 할 수만 있는 대로 사람을 헷갈리게 하려고 합니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구분하지 못하게 합니다. 겉모습으로 은혜를 받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참된 은혜, 구원에 이르는 은혜가 아닌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관심을 갖게 하지도 않고, 무언가 조금 경험하고 종교적인 것을 체험했다고 하면 그것이 구원의 증표나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그만 자족해 버린 채로, 참된 구원을 놓쳐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지금 많은 물을 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불길이 이상하게도 꺼지지 않는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해석자가 보여주는 대로, 벽 뒤에서 한 사람이 “손에 기름통을 들고 몰래 그러나 끊임없이 불 위에 기름을 끼얹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자는 이 사람을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이미 넣어 준 은총” 곧, 구원에 이르는 은총을 넣어주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과의 함께 일으키시는 역사입니다. 불이 있다는 것이 이미 은총의 불길이 붙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지요?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방해공작에 대항해서 그 불길을 보존합니다. 한 번 구원한 사람은 끝까지 그 사람을 보존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은총의 불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칼빈주의 5대교리 중에 “성도의 견인”교리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죄의 짐을 벗어버리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어디에 달렸습니까? 우리의 선행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멸망이 어디에 달렸습니까? 우리의 악행이나 실패 때문이 아닙니다. 이 교리가 오해받기 쉬운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강력하게 변호했던 부분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6:1) 이런 교리를 핑계대면서, 이런 은총에 의지해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은총을 더하기 위해서 죄를 짓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은총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알 때에 “죄의 짐”, 죄로 인한 염려와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마귀는 이 교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귀가 애를 써서 방해하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은 “인간의 영혼은 변함없이 자비로우신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기름을 계속 부어주시는 그 수고가 참으로 크다는 것입니다. “남몰래 벽 뒤에 서서 끊임없이” 부어주십니다. 지금도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구원받은 자를 위해서 지금도 여전히 계속 기도하시고 계십니다(히7:24~25).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이 수고와 공로와 애씀을 우리는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올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등위에 “죄의 짐”이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 중요한 가르침들이 남아 있습니다.
토론문제
1) 벽난로의 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딤후1:7; 롬12:11)
2) 마귀가 물을 끼얹고 있었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계3:15)
3)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빌1:6)
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존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까?(벧전1:5; 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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