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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료실 디아코니아(4)-개신교와 섬김
2013-07-10 00:00:00
관리자 조회수 935
디아코니아(4)
개신교와 섬김
지금까지 섬김의 의미와 개념 그리고 야웨 하나님과 예수의 섬김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이번 호에는 개신교와 섬김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한다. 특히 종교개혁 첫 단계에 중세 가톨릭과 차별성을 가지고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 개신교의 길을 틔운 마틴 루터에 집중하여 섬김의 의미를 조명해 본다. 여러 개혁가들의 섬김사상에 대해 논하기에는 허락된 지면이 너무도 협소하다. 하지만 루터에게서 드러나는 섬김의 내용은 모든 개혁가들의 명제와 상당부분 겹친다. 초대교회의 섬김으로 돌아가 야웨 하나님과 예수의 섬김을 복원시키고자 했던 개혁가의 흔적을 오늘날 되새기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신교란 이름아래 섬김이란 언어가 홍역을 치르는 이 땅에서 진정한 의미의 개신교적 섬김의 의미를 추적해보는 것은 더욱 그러하리라.

개신교와 개신교인
개신교(Protestantismus)는 약 500년 전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유럽,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여러 개혁가들과 평신도들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사건에 의해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분파가 개신교다. 이 개신교가 한국에 상륙한지 약 120여 년이 흘렀다. 필자는 10년이 좀 못되는 기간 동안 개신교의 원 고향인 독일에서 신학과 섬김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마르틴 루터가 논쟁을 벌였던(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생활을 하였다. 종교개혁이 내가 숨 쉬고 학문하는 바로 그 터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신학을 사변이 아니라 사건에 관련된 학문으로 이해하는 것을 도왔다. 지금도 그 대학광장에는 자그마한 동판이 바닥에 박혀있는데, 그 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여기에서 마틴 루터가 1518년 4월에 논쟁을 벌이다.” 이를 통해 나는 내가 속해있는 개신교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종교체계가 아니고 역사적 현실 속에서 치열한 투쟁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된 것이라는 사실에 짐짓 놀라기도 하고 신비한 감흥도 가질 수 있었다.
더욱이 개신교인(Protestant)은 ‘저항자’란 의미로 중세 로마 가톨릭의 업적주의를 통한 구원 이데올로기와 성직자 계급주의 그리고 여러 부패한 요소에 대한 과감한 반란에 참여하는 과정 속에 출현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개혁운동에 가담한 이들의 개신교운동은 교회내적 개혁에 그치지 않고 사회개혁으로 이어져 섬김과 연대를 표방하는 유럽사회의 복지체제형성에 지난 500여 년간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이러한 영향은 독일의 사회국가(Sozialstaat) 형성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귄터 브라켈만이 엮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개신교적 뿌리』라는 문서모음집에 보면, 독일의 사회국가 형성에 개신교인들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가에 대해 아주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사회국가 형성에 독일 개신교가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런 연유로 독일 개신교인들은 그들의 개신교를 사회개신교(Soziales Protestantismus)라 명명한다. 이러한 사회개신교를 가능케 한 가장 근원적인 사상은 무엇인가? 바로 종교개혁 신학과 실천이다.
개신교 원 고향에서의 신학공부를 마감할 무렵, 한국개신교에 대하여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박사논문이 통과되고 마지막 구술시험(Rigorosum)을 치르면서 신학의 전 분야(구약, 신약, 교회사, 조직신학, 실천신학)를 정리하고 시험을 치렀다. 마지막 과목인 실천신학의 주제는 “한국 개신교”였다. 한 시간 동안 교수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험에서 진땀을 흘리며 답변하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시험을 치루는 동안 당혹스러웠던 것은 지구상에 아주 상이한 개신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험관 교수에게 설명해 내는 거였다. 당시 독서카드로 50장 분량으로 한국개신교에 대하여 정리하였는데, 그 가운데 한국 개신교의 성격과 자화상에 대해 간략하게 나열해본다.
한국 개신교, 그 자화상
미국으로부터 19세기말에 들어온 한국 개신교는 근본주의 성향이 강하다. 하여 사회적 신앙과 사회윤리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짙다. 즉 개인 윤리와 신앙강화에 총력을 기울인다. 한국에는 개신교 교단이 150여 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장로교가 117개이다. 그리고 신학교는 36개, 무인가 신학교도 350여 개에 달한다. 18만 목회자 중 70%가 무인가 신학교 출신이다. 개신교인은 861만 명 정도로 인구의 18.3% 정도이며 교회 수는 42,589개 정도에 이른다. 세계 50대 개신교 교회 중 23개 그리고 10대 개신교 교회 중 5개가 한국에 있다.(한국 개신교의 통계수치는 조사자에 따라 편차가 아주 크다. 불투명한 자료와 함께 보고의 과장 내지 축소가 그 이유이다)
한국 개신교 교회가 처한 문제점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맘모니즘이다. 교인 수, 교회건물 크기, 헌금 액수, 목사 사례비, 승용차 모델이 성공의 규준이 된다. 더 나아가 돈에 따라 직분을 부여하여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에 임직될 때에 적정액의 헌금을 암묵적으로 낸다. 또한 주일출석, 전도, 구역예배, 성경공부, 철야기도, 구역헌금 등에 점수를 매기고 구역별, 교구별, 지구별 총점과 등수 그리고 구역통계표를 주보에 싣고 시상도 한다. 이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수량화, 등급화 하는 것이다. 마치 기업체의 계산서나 실적 보고서와 같은 성격이다.
다른 하나는 기복주의 성향이다. 헌금을 많이 내면 물질적인 복을 더 받는다고 설교에선 강조한다. 헌금은 다양하다. 일반헌금(주일, 십일조, 월정, 주정)과 특별헌금(감사, 부활절, 추수감사절, 맥추감사절, 성탄절 등 절기헌금과 신년, 헌신예배, 부흥회 헌금) 그리고 부가헌금(선교, 건축, 구제, 심방, 구역회, 속회헌금)등으로 나누어 거두어들이며 헌금봉투에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주보에 명단과 액수(더러는)를 일일이 열거한다. 이는 헌금이 기복신앙의 도구화된 것을 의미한다. 구원과 화폐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헌금의 지출내역이다. 교회내부에 86.8%, 외부에 13.2%정도가 지출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웃을 섬기는 구제비로는 3-4%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교회재정의 불투명으로 이중장부, 축소보고 등으로 자본주의에 포로가 된 한국개신교에 대한 비판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면이다. 그 한 예로, 무인가 신학교에서는 가짜학위증을 남발하며 목사자격증을 팔기도 한다. 단기코스로 목사를 배출하기도 하며 통신신학교를 통하여 목사가 되기도 한다. 부흥회는 자금확보를 위한 기회이며 외상헌금, 작정헌금을 내기도 한다. 이를 위해 마케팅전략이 동원된다. 기도원은 요양기관으로 가장하여 치부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대형교회는 체인점식 교회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여 상업주의에 빠져있다. 교단장 선거 때 돈다발은 관례이며 성직매매도 이루어진다. 교회를 프리미움을 얹혀 사고판다. 과시성 대회인 대규모집회와 교회꾸미기 그리고 교회 건물의 귀족화와 고급화가 당연시된다. 이는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하거나 교회를 사유화하는 경향으로 발전된다.
특히 한국 개신교 교회내의 직분구조는 위계적 질서가 뚜렷하다.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 평신도 등으로 구성된 한국 개신교 직제가운데 의결, 관리, 인준, 재정 등의 관리는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직제그룹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정치·경제·권력과의 유착, 친미 반공주의, 교회내의 성차별과 성폭력, 권위주의적 성직자 중심주의 등으로 이어진다. 성직자 중심주의와 섬김실천의 약화, 이는 개신교의 본 성격에서 아주 거리가 있는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하겠다.

독일 개신교, 그 자화상
교파형 교회 그리고 개교회주의인 한국 개신교와는 달리, 개신교의 원 고향 독일 개신교는 독일교회총연합(EKD)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948년 처음으로 연합한 독일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말씀선포와 섬김사역으로 삼고 있다. 독일의 디아코니아 운동이 1848년 비헤른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들도 섬김사역을 교회의 본질로 교회법에 올리게 된 것이 100년이나 걸림 셈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히틀러에 의한 국가사회주의를 경험하면서 ‘교회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뼈저리게 고민한 고백교회운동가들과 각성된 개신교인들에 의해 교단을 하나로 연합한 것이다. 이들에게 교회는 이제 건물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타자를 위한) 섬김의 교회가 교회라 고백하게 된 것이다. 미친 운전사가 운전할 때, 무조건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운전대를 빼앗아 다른 승객들을 안전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본훼퍼의 예에서 보듯이, 이제 교회는 ‘행동속의 교회’여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천명한 셈이다.
독일 개신교 교회는 자신의 신앙고백에 따라 종교세(개인의 월 소득세의 8-9%)를 세금으로 낸다. 때문에 독일교회는 한국 개신교 교회처럼 각종 헌금이 없고 교회에 내는 십일조도 물론 없다. 하지만 그들은 종교세 이외에 사회적 세금을 내고 그러한 세금은 사회국가의 복지재정의 주요 재원이 된다. 참고로 그들의 사회지출비 규모가 GDP 대비 33.2%(1996년)에 비해 한국은 6.40%(2001년)이다. 한국은 21세기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사회지출비가 독일의 1/5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교회에서 내는 헌금은 주로 섬김을 위한 목적헌금이 주류를 이룬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위한 헌금, 북한의 식량난을 위한 헌금, 중국 지진피해를 위한 헌금 등. 특히 직제에 있어서도 말씀선포를 담당하는 목사와 섬김사역을 담당하는 디아콘이 사역을 하고 일반적인 교회의 일은 평신도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집행을 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독일에서 섬김(Diakonia) 개념은 최소한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먼저 섬김은 가족, 이웃 안에서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인간 상호간의 도움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섬김은 시설물, 연합, 독일안의 사회복지 건강공공사업단 그리고 독일 개신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합기구형태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섬김”은 종종 “디아코니아 사업단” 혹은 특정한 디아코니아 시설물로 사용된다. 세 번째 의미에서 섬김은 그리스도교적-교회적 도움으로 확장되고 에큐메니칼적으로 사용된다. 독일 개신교 총연합은 섬김사역을 독일 개신교 디아코니아 사업단에 위임하여 연대하며 나아가고 있다.
현재 독일의 개신교 디아코니아 사업단은 약 31,000개이고 40만 여명의 직원이 그 곳에서 일하고 있고 40만 명 정도의 자원 봉사자들과 100만이상의 의료침대나 수혜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직원 중 26만 명 정도가 고정된 시설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그 중 40%에 해당하는 이들이 양로원, 청소년 기관, 장애인 기관, 그리고 병원에 속하여 있다. 또한 4300여 개의 자원봉사 동아리들이 움직이고 있고 18,000개의 교회가 이 섬김의 사역에 연대하며 나아가고 있다. 즉 25개의 주교회(Landes kirche)와 9개의 자유교회(Freikirche) 그리고 90개의 전문협회가 디아코니아 기관에 속하여 있다. 구체적으로 독일의 디아코니아 실천은 국내와 국외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개신교 핵심명제, 섬김
한국 개신교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한 강조는 믿음과 섬김의 실천의 관계에 있어서 전자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한국개신교 교회 일반의 이러한 의인론 이해로 인해 행위, 즉 신앙으로 인한 섬김의 실천은 지속적으로 개인적인 책임이나 즉흥적 결단에 의한 것으로 치부되어 신학이나 학문의 범주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흔히들 주장하기를, 정통 루터신학의 핵심인 의인론으로 인해 행함이 약화되었다고 한다. 또한 돕는 사랑은 강한 개인적 책임 즉흥적 결심이며 사랑은 학문적 구조 밖에서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주장은 정당한가?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가난한 이들과 곤궁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인간 안에 사랑이 커간다. 인간은 면죄부를 통해서는 더 나아지지 않고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곤경에 처한 이들을 보고도 돕지 않고 그 대신 면죄부를 위해 돈을 쓰는 이는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

이 명제는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 부속교회에 붙인 마틴 루터의 95개 테제 중 43-45번 테제이다. 또한 ‘면죄부와 은총에 관한 설교’에서 루터는 거듭 강조한다.
베드로 성전을 짓는데 헌금하는 것보다 빈궁에 빠진 이들에게 주는 선한 행위가 더 낫다. 면죄부보다 그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 루터 당시 면죄부는 로마의 베드로 성전건립을 위해 건축비의 충당을 위하여 로마 가톨릭교회가 헌금명목으로 거두어들인 것이다. 즉 구원과 화폐를 교환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내는 것보다 가난한 이웃에게 직접 건네주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면 어떠한 반응이 돌아올까?”
상술한 95개 테제는 개신교의 아주 중요한 테제이다. 여기서 루터는 행함, 섬김을 약화시키고 믿음만 강조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종교개혁의 핵심명제인 의인론은 자선행위가 죄를 없애는 힘이며 업적주의에 근거하여 자선을 행하는 이에게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는 구원이데올로기를 흔들어 놓았고 관점을 바꾸어 놓는다.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는 이웃을 향한 존재가 된다. 이웃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믿음 안에서 이웃을 향하는 자유한 그리스도인은 타인에게 동시에 그리스도가 되며 이웃에게 “자유로운 재료”로 섬김에 투신하게 된다.
개신교, 특히 루터교, 개혁교, 영국교회는 의인론 교리인 ‘믿음으로’ 만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인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하게 되었다. 즉 특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없다는 말이다. 모든 믿는 이들의 사제직은 바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종교개혁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간극을 제거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주교에게 그리스도교적 봉사가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지양하고, 교회생활과 교리의 모든 기능, 성례전, 재정관리 그리고 섬김직의 기능이 한군데로 집중되는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 결과 교구목사는 교구주교로 승격되었고 모든 신자의 사제직분화, 섬김직화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이웃사랑이 강화되고 의무화되었다.
전술한 것처럼, 종교개혁은 중세 가톨릭의 성직계급이 가져왔던 교회 내 계급구조의 종말을 의미한다. 즉 만인사제직에 의거한 새로운 사고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직업윤리의 자의식을 변혁케한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 특히 평신도의 위상이 교회 안에서 새롭게 제기되었고 이들의 자의식과 사회문제에 관한 독자적 책임이 구체적으로 부각되었다. 즉 세례 받고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명제에 기초한 새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제까지의 불평등의 구조가 아니라 동일한 지위로써 하나님 앞에 대담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는 법적- 평화 질서의 모델로 사용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목사와 장로로 대표되는 성직자 중심주의 그리고 말씀중심, 믿음중심으로 인한 섬김실천의 상대적 약화 내지 소홀… 이는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변형은 정당한가?

섬김의 복지화, 개신교
종교개혁의 새로운 기풍에 늘 주제를 함께한 것이 복지문제였다. 복지라는 개념은 15세기에 등장한 개념으로 1530년 이래 복지(Wohlfahrt)라는 단어는 개신교적 사회정치적 논문 속에 등장한다. 이 개념은 특권 없는 민주주의적 체계를 지향하는 것으로 권력의 오용에 대항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위계질서적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아래 복지정책의 발전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종교개혁 신학에서 우리는 복지선교 즉 디아코니아 신학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의 영향사를 추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발전시켰다. 근대 사회복지운동의 출발로 여겨지는 종교개혁시대의 사회복지운동의 주요 특징들은 중앙화, 평신도화 그리고 합리화로 정리된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이는 마틴 루터였는데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개혁 즉 사회복지 개혁의 구체적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한 연구사는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트릴취(E. Troeltsch)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복고적인 성격의 것이라 요약하였다. 그리고 그는 사회윤리나 사회정책이 새로운 길을 갈수 있었던 것은 다른 힘들, 예를 들어 행위에 있어서 칼빈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판단에 반대하여 홀(K. Holl)은 다른 자료를 제시하며 루터에게서 “하나의 아주 전체적인 개혁 청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제시한다. 또한 디아코니아의 영역에서 울호른(G. Uhlhorn)은 루터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실천을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발전시켰다”고 평가한바 있다. 그 후 트릴취의 반대 입장을 지닌 엘러트(W. Elert)는 심층 역사적 연관성속에서 루터의 의미를 현대의 사회법적 그리고 복지 국가적 발전측면에서 연구를 진행시켰다. 엘러트는 루터에 의해서 처음으로 “일반적 복지”의 의미에서 국가목적규정이 확장되어졌다고 주장한다. 즉 루터가 근대 사회복지 제도의 기초를 놓았다는 사실을 논증하였다.

섬김신학과 루터
마틴 루터(1483-1546)에게 있어 섬김 개념은 디아콘(Diakonen) 직제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종종 여겨진다. 이 부분에 있어서 보통 부처(M. Bucer)나 칼빈(J. Calvin) 그리고 다른 개혁가들이 강조 되어진다. 하지만 루터의 신학은 전체적인 의미에서 “섬김의 신학”으로 평가되며 이러한 지평아래 새로운 신학적 명제들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루터의 종교 개혁적 단초에서 “섬김의 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찾아내는 작업은 부분적일 수 있다. 그의 신학은 오히려 “섬김의 신학”이고 포괄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 안에서 인간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세상에서 보편적인 섬김을 하시는 하나님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루터는 신앙과 사랑과의 관련성을 아주 탁월하게 정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그에게 있어 신앙-인간에게 생명을 생성하는 하나님의 행위로서-은 사랑으로 역사한다.(비교. 갈5,6) 순전한 사랑을 행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과 연결됨을 통하여 생기는 신앙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앙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 즉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사랑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하는 사람은 이미 실현된 사람이다. 때문에 그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전혀 유보하지 않는 자유한 존재가 된다.
로마 가톨릭에 의해 파문으로 이어진 루터의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중심메시지에 관련된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총체적이고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각한 개인적 위기를 겪고 난 후, 그는 신학이 죄와 자기주장 그리고 무지에 사로잡힌 인간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정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의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루터는 인간 스스로가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근거라 여기지 않았다.
루터는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의와 인간의 행동으로 결과된 의를 대립시키면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 그리고 의로운 행위를 통해 -법과 규정 그리고 교회의 규정들의 성취-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스콜라적 신학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한다. 루터는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멀게 하고 인간을 교회의 지배의지 아래 종속시키는 구제불능의 인간의 의와 구원하는 행위로써 인간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대별시킨다. 이로써 루터는 인간이 의로워지는 것은 자신의 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먼 곳으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수용함으로 그분의 도구가 되고 전적인 헌신에로 향하게 된다. 자기 자신과 자만으로부터 해방,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외경은 루터가 제시한 새로운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을 향해 살아간다. 즉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사랑을 통하여 이웃 안에 살아가게 된다. 루터는 1536년에 쓴 “인간에 대한 논쟁” 말미에 다음과 같이 서술 한다. 이러한 생명의 인간은 개혁적이고, 재형성되고,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목표로 한 미래의 형성을 위한 하나님의 재료이다.
섬김을 위해 해방 받은 이들은 세상과 화해하시는 하나님의 섬김을 행하고자 한다. 하나님 사랑은 사랑할 만한 것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 사랑은 죄인들, 악한 자, 어리석은 자 그리고 약한 자들을 의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 그리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작은 것, 멸시 받는 것, 고난 받는 것, 죽은 것들을 값진 것, 존경스런 것, 복된 것으로 만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존경, 부, 지식 등, 크고 높은 것들을 섬긴다. 그와 반대로 가난, 수치, 곤경, 비탄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하지만 화해의 섬김은 이러한 모든 가치를 전복시키며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킨다. 화해의 섬김은 하나님의 질서에 따른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피조물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사랑의 의무”에 대한 한계와 질서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 중세 가톨릭의 스콜라적 교리와 루터의 이해는 상치된다. 구체적으로 스콜라적 교리는 이웃이 누구이고 언제 이웃이 곤경 속에 있는가, 수준에 적절한 삶은 무엇인가, 또한 반대로 불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자선을 베풀 때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에 주안점을 둔다. 이와 반대로 1516년 루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외형적인 곤경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랑은 나태하고 마지못해서 하는 게으른 것으로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이어서 루터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황금률의 의미에 대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이것이 사랑의 기본법이요, 이성의 기본법, 즉 그리스도인이나 비 그리스도인에게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 진술한다. 루터에게 있어 그리스도인들은 “섬기는 존재”이어야 하며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책임 있는 섬김의 과제들을 하나의 의무로써 이행할 것을 강조한다. 즉 이웃 사랑의 실천은 ‘환희에 찬 교환’이라는 그리스도 신비의 사건이자 결과라 서술한다.
루터에게 있어 특징적인 것은 곤경 속에 있는 이웃에 대한 즉각적 관심이다. 동시에 그러한 곤경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조직적으로 관심하는 것이 신앙의 자명한 열매라고 주장한다. 루터는 당시 교회의 가난과 자선에 관한 이해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중세 후기의 자선은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에서 자발적인 가난은 영적인 완전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이러한 자발적 가난은 중세 후기 교회에서 활동한 수사들, 신부들, 탁발 수도승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하지만 루터는 노동력이 있는 이들의 구걸행위와 자선행위를 신학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구원이데올로기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구걸행위는 루터에게 있어서 이웃 사랑의 반대이고, 하나님 질서와 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부도덕의 시작이자 인색의 겉표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무도 진정한 의미의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루터는 주장한다. 또한 구걸은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직업교육이나 구직을 통해 극복되어져야 한다고 루터는 주장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다시 말해, 운명적인 가난, 질병, 양육자의 죽음으로 인한 경우에는 공동체가 적정하게 생계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의무를 지우게 했다. 이미 많은 도시에서 규정화된 빈자보호의 단초가 있었지만, 루터는 그의 디아코니아신학 안에서 복지보호를 향한 이상을 관철해 나갔고, 특히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법적 공동체가 실현되어질 수 있는 사회복지법을 강화해 나갔다. 루터는 구걸행위를 폐지시키는 법을 공포하였고 빈자보호법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돌보게 하였다.
루터는 평신도위에 성직자 계급이 존재한다는 중세의 사회계급질서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무너뜨린다. 그리고 세 개의 신분현실을 인간의 현실적인 삶과 연관하여 제시한다. 즉 교회 신분, 정치 신분, 그리고 경제 신분 각각을 하나님과 교회와 관련시켜 모든 이들이 자신의 다양한 삶의 현실에서 이러한 신분관계에 참여하게 한다. 이러한 3중 신분 교설은 현실 개혁의 모델로써 간주된다. 이를 매개로 하나님은 그의 세상을 형성해나가고 보존해 나가신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인간은 중요한 책임을 부여받게 되고 정치, 교회, 경제의 영역에서 다양한 신분들안에 전체적인 창조적 섬김을 향한 특별한 임무가 부과된다.
교회 신분: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동지와 형제가 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소명을 받고 현실 안에서 새롭고 근원적인 질서를 담아낸다. 여기에서 만인사제직의 사고는 현실의 성직자 계급과 맞서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세례, 설교 그리고 주의 만찬에서 그러한 가능성들이 만들어지고 이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섬김에 동참하신다. 그 결과 루터는 곤경에 처한 형제들을 돕고 섬기는 그리스도적 사랑이외에 더 큰 예배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신분: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 재산, 노동의 수확물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황금률의 의미에서 이 모든 것은 이웃을 섬기는데 이용되어져야 한다. 이웃을 섬기는데 사용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불의하게 소유한 것이라고 루터는 주장한다. 또한 곤궁한 이들에게 물질을 기꺼이 주고, 이자 없이 빌려주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노동은 창조적인 섬김으로 간주되며 노동을 통해 이웃을 향한 섬김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또한 노동의 과정 속에서 약자들이 배려되어야 한다.
정치 신분: 로마서 13장에서 세속 권력자들은 세상에서 섬기는 역할을 지닌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공적인 섬김 의무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 “재판관, 서기 그리고 학자 그리고 국민 모두는 그들의 직분 안에서 권력자들에게 도움을 조언하고 관할하여야 한다.” 또한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 유용하게 행동해야 하는 공적 직무는 “설교자, 법학자, 목사, 의사, 교사”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어하는 직무 외에 공적인 목적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1519년 식탁 성례전에 관한 설교에서 다음을 분명히 한다. 즉 기본적인 삶의 일상에서 함께 나누는 것은 원시 그리스도교회의 기쁨과 힘을 맛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고난을 드러내고 영적인 몸의 지체들에게 도움을 찾는다.” 상호간의 섬김은 살아있는 교회의 표식이며 모든 교인은 -만인 사제론에 의거- 분명히 디아콘이다.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위임을 구체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이 문제이다. 루터에 의해 고무되어지고 실현된 종교 개혁적 교회규정은 그의 제자들과 많은 도시들에서 실천되었는데 분명한 것은 “예배와 직제 이해에 대한 개혁은 사회적 생활의 혁신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섬김실천과 루터
루터는 정치 당국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다른 한편 그는 교회가 그들의 섬김실천의 차원을 다시금 발하도록 신학적으로 서술했다. 즉 그는 구걸행위의 금지와 함께 시 행정당국이 빈자들을 위한 복지의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것을 요청했다. 루터는 걸인에 대한 중세후기의 비판을 수용하였다. 구걸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다. 곤경으로 인해 사람이 구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의 구걸행위에 대한 거부의 이면에는 직업과 관련하여 노동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내재되어 있다. 루터에게 있어 노동은 한편으로 죄로 인해 파생되는 무질서의 세력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루터에게 있어 노동은 이웃사랑의 증명으로 간주된다. 이에 반해 구걸행위는 이웃 사랑에 대한 거부와 무질서로 여겨졌다.
루터의 서문이 담긴 라이스니히 금고규정(1523)은 교회의 디아코니아적 섬김실천능력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라이스니히 금고규정에 의하면, 빈자구호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과 계명에 따르는 일에 속한다. 때문에 곤경에 처한 이들이 “매주 일요일”에 공동 모금함으로 인해 도움을 받으며, 금고감독자는 “매주 일요일”에 교구내의 곤경에 빠진 빈자들과 상담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에는 빈자에 대한 지원이 개별적으로 관리되었다면, 이제는 모든 이용 가능한 수단들이 공동금고 안에 집중되어진다. 이렇게 집중화된 수단들은 이제 효과적으로 이용되어질 수 있게 되었다. 게하르트 울호른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정당한 지적을 한다. “여기에 중세의 복지 행위와 종교개혁적인 빈자구호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전에는 우연적이고, 구분이 없는 자선적 시혜가 있었다면, 이제는 실제로 가난한 이들이 노동을 기피하거나 빈둥거리는 걸인들과 구분되어지게 되었다.” 도움은 오늘날 통용되는 보충의 원칙에 따라 엄격히 주어졌다. 즉 병이나 연로함 혹은 다른 어쩔 수 없는 이유들에 의해 노동을 할 수 없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없는 경우,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의 엄격한 구걸금지는 동시에 규정화된 복지의 설정에 대한 의무를 담고 있다. 라이스니히 금고규정은 종교개혁으로 하여금 새로운 지역사회 형성을 추동시켜 낼 수 있었던 하나의 중요한 문서라 할 수 있다. 이제 빈자구호는 더 이상 시설적으로 구성되지 않고 공동의 빈자구호로 이루어진다. 또한 빈자구호는 전체 교회와 시민들에게 책임이 지워지게 되었다.
루터는 빈자문제에 관한 특별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비판과 함께 인문주의와의 창조적 대화로 새로운 교회론을 제시함으로 중세의 교회보다 더 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디아코니아적 실천을 가져오게 했다. 디아코니아는 루터에 의해서 특수한 제도로 위임된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에 하나의 자명한 과제가 되었다. 루터의 라이스니히 공동 기금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규정으로 개신교의 첫 번째 빈자를 위한 세금이라 할 수 있다. 이 실험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522부터 1530년 사이에 독일의 도시 중 25개 이상 빈자규정이 생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빈자구호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로 종교개혁은 종교적 갱신운동과 정치적 근대화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개혁운동이었다. 여기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루터가 중세의 업적주의 신학을 비판한 것이지 수도원의 빈자구호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의인론은 빈자구호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 한다. “올바른 신앙이 있는 사람은 행위가 따른다. 그리고 신앙이 큰 사람은 행위도 크다.”
선행의 업적은 루터를 통해 철저히 부정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직업윤리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더 이상 영적인 신분에만 우선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행위 속에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가능하게 된다. 즉 농부가 들판에서 하는 그의 노동행위 자체가 예배로서 평가되어진다. 또한 루터는 일반적인 직업 속에서의 노동이 이웃을 섬기는 행위이며 교회전통 속의 사랑의 의무와 일치시킨다. 루터는 일상직업의 예배적 차원을 강조하며 이전까지의 희생의도의 핵심을 분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자선행위의 거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터의 복지원칙과 영향은 16세기의 중앙화된 빈자구호를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종교개혁은 복지사업의 세상적 구조와 사회정책의 새로운 발전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 구체적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즉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도 루터의 사고를 종교개혁과 함께 받아들였다. 이들 각 나라는 다양한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통일된 섬김실천의 모델은 말할 수 없지만,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회복지국가를 형성해 나아왔다.
요약하면 루터에 의해 주장된 종교개혁의 명제인 의인론은 사회복지 실천에 대하여 철저히 새로운 신학적 방향설정을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의인 신앙과 행하는 이웃 사랑을 연결시킨다. 이로써 루터는 행하는 이웃 사랑을 ‘즐거운 교환’이라는 그리스도 신비의 결과와 사건으로 강조한다. 그 결과 선한 행위는 더 이상 업적성에 의해 판단되어지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일상적 노동과 직업에 대한 예배적 차원을 부각시킴으로 이전의 경건실천을 거부하게 하였다. 또한 루터는 사랑의 공공성을 위하여 제도적 복지를 강조한다. 이러한 신학적 단초는 비텐베르크 헌금자루규정과 라이스니히 금고규정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규정들은 종교개혁이 유럽사회 복지체계의 형성에 있어 근간을 형성케 했음을 보여준다.

개신교 섬김의 변형과 복원
종교개혁가들의 직제에 관한 이해는 종교개혁기간 내내 이전의 가톨릭과는 아주 다른 입장을 고수하였다. 즉 이들에게 있어 성직자와 평신도의 질적인 차이는 지양되었다. 하지만 직제의 가르치는 기능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직제에 권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개혁가들의 사후, 얼마 안 되어 교리화, 정통주의화, 화석화되어갔다. 또한 공동금고규정은 개신교 내부의 신학적 논쟁과 신앙고백전쟁을 겪으면서 교회의 디아코니아적 제도로써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공동기금은 행정당국이나 특별재단의 책임으로 넘겨지게 된다. 또한 빈자구호를 위한 구체적인 섬김사역자인 디아콘과 디아코니쎄도 차츰 사라지게 되거나 목회의 보조역할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신교적 정체성과 본질의 결핍은 17세기부터 그 면모를 드러낸 경건주의운동과 19세기의 디아코니아운동에서 다시금 강화된다. 그 결과, 종교개혁의 신학과 실천인 섬김은 오늘의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국가 그리고 유럽의 사회복지체계, 더 나아가 유럽 통합과정의 가장 근저에서 사회적 에토스로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즉 사회복지국가의 원칙인 보충과 연대의 원칙이 유럽사회의 사회적 보편가치관으로 자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섬김(디아코니아)운동을 강화하고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영향사적 고찰은 당면한 한국 개신교의 섬김실천에 대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추동시킨다. 또한 개신교적 정체성에 기반한 섬김실천을 강화시키고 당면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섬김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로 이끈다.

나가면서 하는 넋두리
촛불문화제가 한 달 여를 이어가고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을 직접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초기부터 매양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였지만 10% 대의 지지율이 가리키는 것처럼 소통이 전혀 안 되고 있다. 섬김은 소통의지와 소통능력에 대한 학습을 요한다. 섬김의 정부는 이 두개의 사안이 모두 결핍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과의 소통이 안 되어 밤새 거리에서 외치며 차가운 도로위에서 수많은 이들이 날밤을 지새운 지 한 달여가 지나간다. 그런 이들을 향해 몇몇 개신교 목사들은 사탄의 무리, 마귀, 어둠의 세력, 친북좌파 운운하며 하나님을 믿으니 장로도 믿자고, 미국을 믿자고 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위해주는 척하며 속으로는 해치려는 사람이 더 밉다는 말이다. 더 미운 사람이 시누이라는 말이다. 시누이 역할을 하는 소위 한국 개신교의 주류(?)라 불리는 목사들이 있다. 귀 막은 정권보다 더 기가 막힌 이들이 그 주변에서 궤변을 늘어놓으며 편드는 이들, 바로 몇몇 개신교 목사들이다.
개신교는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니 성직자들의 전유물인 개신교는 이미 개신교가 아니다. 500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개신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카리스마를 받게 되고 동일한 지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다는 만인사제설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믿음 안에 사는 이들은 자신을 이웃을 위한 섬김에 몸을 내어맡긴다.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세상의 기류에 편승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아나 과부, 재산이 하나도 없는 레위인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인 나그네를 전적으로 섬기는 존재 야웨 하나님으로 깊이 들어간다. 하여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결단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들 몸 안에서 사랑을 불러 일으켜 자신도 모르게 섬김의 현장으로 나아가게 한다. 기(氣)막힌 이 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개신교적 섬김이 신자유주의에 의한 신빈곤으로 격리된 이 땅의 많은 민중들과 성장과 효율이란 미명아래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로 냉혹하게 내몰리는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의 어두운 골목에 다사로이 피어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