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이란 말은 이 시대의 화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목회자 그리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요즘처럼 이 단어가 자주 입에 오르내린 적은 없을 듯하다. 지난 2월 25일 새로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낮은 자세에서 섬기겠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5대국정지표의 마지막 지표는 무엇인가? 섬기는 정부다. 이는 정권인수하는 과정에서 인수위의 이경숙위원장의 입장과 그 맥을 잇는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한 교회의 장로와 권사이다. 근간에 기독교 학회에 가면 ‘섬기는 리더십’이 주제로 많이 등장한다. 올해 10월에 열릴 기독교 공동학회에서도 섬김을 통한 선교의 확장방안이 하나의 주제로 설정되어 있다. 이쯤 되면 섬김의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섬김을 ‘학’으로 공부한 관계로 이러한 현상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10여 년 전 독일에서 만난 ‘섬김학(Diakoniewissenschaft)’은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나에게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열어 주었고, 지구 한편의 섬김의 실천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하였다. <학>은 <체계적 지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섬김을 학문으로까지 만들었을까? 그냥 섬기면 되지 무슨 이론이 필요할까.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 섬김학의 넓이와 깊이에 매료되어 있다. 그리고 아직도 초보의 수준에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섬긴다는 것, 그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란 것을 세월이 가면서 더욱 절감하게 된다. 섬김이라는 단어의 오용과 무지가 얼마나 반(反) 섬김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은 지난 날 기독교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천 년간 기독교역사에서 섬김을 말하지 않은 종교 지도자, 정치 지도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겉으로는 섬긴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지배를 위한 하나의 수사로 섬김을 이용한 예가 허다했다는 사실이다. 섬김의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절망과 우려하는 말들이 터져 나온다. 한국 사회의 5대 불안을 주거, 일자리, 노후, 자녀양육 및 교육, 의료라 하는데 이 모두가 총체적으로 불안하다고 한다. 또한 새로이 세운 국정지표에는 현재 사회문제의 핵심사안인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에 대한 해결의지가 박약하고 정체불명의 ‘능동적 복지’라는 개념 속에 화려한 수사들이 가득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민간중심, 경쟁과 효율 중심, 잔여주의적 복지로 인해 공공성과 국가 책임주도의 사회안전망이 후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승호의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을 읽으면서 이 땅의 황당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섬김이라는 단어의 이해와 관련해 완전히 다른 이해체계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케 된다. 섬김(Diakonie)이란 단어는 독일과 유럽에서 개신교인들의 신앙에 의한 사회적 실천을 가리키는 하나의 대명사이다. 즉 오늘의 독일과 북유럽의 사회국가(Sozialstaat) 형성에는 개신교인들의 섬김실천이 뿌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런 사회적 에토스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섬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개신교의 태동지인 그곳에서의 섬김은 사회복지를 형성하는 가장 핵심코드로 작용하고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주 당혹스런 일이 있다. 섬김의 정부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의 표절의혹이 있는 『사회복지의 발달과 사상』이라는 책의 결론부에서 한국복지의 나가야할 방향을 다음으로 정리한다. 그의 진단에 의하면, 지금 한국에는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복지정책을 지지하는 집단과 서구의 사회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복지 정책을 지지하는 집단이 병존한다. 그래서 복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고 이로 인해 복지 선진화에 장애가 온다고 진단하면서,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결국 그는 미국식으로 복지정책의 정체성을 찾고, 이를 위해 신앙심을 동력으로 가져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우려스럽다. 5,000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의료보험이 없어 의료사각지대에 사는 미국의 현실이 우리에게 곧 도래한다니! 하지만 여기서 한마디 덧붙일 사안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이다. 공화국은 공공성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말이다. 공공성과 국가의 책임성을 방기한 야만의 나라는 경쟁과 효율만을 앞세우며 냉혹한 사회로 침윤시켜 버린다. 도대체 섬김이 무엇인가?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이웃 사랑, 하지만 사회적 체제형성에도 ‘섬김’이라는 담론은 작지 않은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 차제에 신학적 입장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해보는 것은 시의 적절한 주제라 생각된다.
섬김, 왜 왕따 당해 왔는가? 서두에서 나는 요즈음 한국사회는 섬김의 르네상스라 했다. 마찬가지로 요즈음 유럽에서도 섬김이 붐이다. 이러한 현상은 동구권이 몰락한 1990년대 이래로 더욱 가속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섬김실천은 교회역사 속에 주변부로 밀려나 왕따 당한 역사적 상흔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한 현상이 생겨났을까? 그 하나의 예를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 명제 중 핵심인 칭의론을 들 수 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이 명제는 한국교회에서 믿음과 사랑의 실천의 관계에 있어서 전자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행위, 즉 섬김의 실천은 지속적으로 개인적인 책임이나 즉흥적 결단에 의한 것으로 치부되어 신학이나 학문의 범주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루터의 칭의론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옳은가?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서론부를 보자.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해 자유로운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을 섬기는 종이며 모든 이에게 예속된다.
또한 그는 중세 가톨릭의 업적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선행은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자유로운 사랑에서 온다고 했다. 이를 통해 루터는 선행자체를 부정하거나 폄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유보하지 않는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기 위해 칭의론을 주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신학은 화해의 말씀에 봉사 한다”라는 명제이다. 이로 인해 신학, 더욱이 실천신학에서조차, 선포된 말씀 그 자체가 힘을 가지고 실천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신학 작업가설이 생기게 되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성서의 진리는 성서본문에서 설교, 설교에서 실천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성서본문, 성서구절은 가장 핵심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또한 이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설교자로서 목사의 역할은 다른 직제보다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기능으로 이해된다. 그 결과 교회의 다른 기능들은 그 다음의 위치로 밀려나게 된다. 결국 섬김의 실천은 학문적인 영역과 교회의 본질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현실에서 곤경 당하는 이들과 사회문제를 신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미해결로 남겨지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는 현대사회의 고도로 분화된 현실에 대해 바른 신앙적 실천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이미 상술한 전통적 신학작업가설의 기본 구도인 성서 본문에서 설교, 설교에서 실천이라는 일방통행식 방향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현실 문제에 대한 성찰”로부터 성서가 제시하는 근본의도가 재 질문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재 질문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과 교회의 섬김 실천에 간극이 깊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섬김실천 자체가 복음선포이다 그렇다면 섬김이라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어 디아코니아(diakonia)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단어에 대한 개념이해에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논의가 최근 들어 활발하다. 이는 섬김 현장의 요구와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즉 디아코니아는 오늘날 더 이상 곤경에 빠진 이들을 위한 도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하게 분화되는 사회복지체계 속에서 깊은 연관이 있는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디아코니아 단어 자체에 대한 신약성서적 근거가 중요한 학문적 주제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디아코니아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 대한 봉사이다. 19세기 중반 이래 디아코니아는 이웃에 대한 봉사, 즉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디아코니아에 대한 개념은 19세기 중반 이래 독일 디아코니아 운동의 실천현장에서 근거한 것이다. 그리스어인 diakonein(섬긴다)/ diakonia(섬김)/ diakonos(섬기는 사람)는 신약성서에서 섬기는 기능을 표시한다. 특히 식탁에서의 봉사(막 1:31)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로부터 치유를 받고 사람들의 시중을 든다. 하지만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예수는 지배적이고 위계화된 것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데 이 섬김 개념을 사용한다.
민족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하지만 너희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예수는 권력가처럼 이 땅에 지배하거나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천명한다. 여기에서 예수의 섬김은 억지로 “낮아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표식에 대한 중요한 구성요건이 된다. 더 나아가 이 단어는 말씀 선포 자체에도 사용된다. 사도행전 6장 1-7절에서 섬김의 다양한 용례를 발견하게 된다. 교회가 형성되고 그리스도인이 증가함에 따라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구제사역에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도들은 구제하는 일과 음식 베푸는 일(diakonein, 행 6:2)을 위해 일곱 사람을 뽑고,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diakonia logou, 행 6:4)은 사도들이 담당하기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음식을 베푸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이 모두 디아코니아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섬김을 선포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섬김실천 자체가 복음의 선포이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말씀선포의 결과로 섬김실천이 일어난다는 고전적인 패러다임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독일 디아코니아운동 150년을 기념하여 1998년에 독일개신교연합이 발간한 백서의 제목은 좬가슴과 입과 행동 그리고 삶좭이다. 이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 제목(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muss von Christus Zeugnis geben)에서 온 것이다. 즉 우리의 온 몸, 즉 가슴과 입과 행동 그리고 삶으로 그리스도가 증언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의 소통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는 데, 바로 섬김의 실천 자체를 통하여서도 일어난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말씀으로 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 돌아보지 않는 병실 한 구석, 차디찬 감옥, 중증 장애인 요양소, 독거노인의 쓸쓸한 방, 호스피스 병동 등에서 작은 손을 내미는 섬김실천을 통하여 복음은 뜨겁게 소통된다. 섬김, 하나의 운동으로 점화되다 여기에서 독일의 디아코니아 운동을 소개해 본다. 종교개혁의 핵심사상인 만인사제설의 전통을 다시금 회복시키려는 독일 디아코니아운동은 150여 년 전 산업혁명의 결과로 생긴 수많은 사회문제에 무방비와 무관심으로 일관한 기존교회에 대항하여 생긴 개혁운동이자 각성운동이었다. 처음에 이 운동은 신앙각성운동에 헌신적으로 자신을 던졌던 평신도들과 당시의 화석화된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살아있는 신앙의 회복과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즉 이들은 당시의 사회문제에 대해 교회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강하게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밖을 향한 선교가 아닌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의 각성(innere Mission)을 요구하게 되었고, 교회의 본질인 디아코니아가 회복되어야 할 것을 주창하였다. 이어 각성운동의 아들이자 독일의 디아코니아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요한 힌리히 비헤른은 1833년 방치된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양육하는 공동체, “구원의 집”을 세운다.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전문 섬김이(Diakon)를 교육하는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가운데 500년 전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고 95개조의 반박문을 내세우며 당시 중세의 가톨릭 신학과 교회에 당당히 도전하였던 비텐베르크의 성 부속교회에서 1848년 9월, 이른바 1회 독일 교회의 날 행사가 있었다. 그 때 비헤른은 즉흥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사랑은 교회에 있어 신앙에 속한다(Die Liebe gehort mir wie der Glaube)”라는 그의 언설과 함께 디아코니아운동의 거대한 화산이 분출되었다. 비헤른은 당시 산재하여 있었던 협회(Verein) 단위의 디아코니아 실천들을 하나로 연대하고 통합하는 일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1849년 내적선교(Innere Mission)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또한 대도시에서는 1877년 이래 도시선교회(Stadtmission)라는 기관이 설립되어 도시의 사회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기관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적선교는 사회구조의 틀 안에서 디아코니아를 구체화하기 위해 비스마르크 정권의 사회법 제정에 깊이 관여한다. 그 결과 1883년 의료보험, 1884년 산재보험, 1889년 근무 장애보험과 노후 연금보험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은 평신도이자 내적 선교 중앙위원회의 구성원인 법학자 테오도아 로만에 의해 공식화되는데 비스마르크 수상은 그를 통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로만은 공식화된 사회법을 ‘법적으로 형성된 실천적 그리스도교’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독일의 사회적 국가의 출범시기를 1881년 비스마르크 수상을 통한 빌헬름 황제 1세의 ‘사회적 사신’이 발표된 11월 17일을 말한다. 이때 이후로 독일에서 사회적 안정망에 대한 근본사고체계의 지속적인 입법화가 가속화된다. 때문에 국제적인 비교에서 독일복지 시스템은 ‘비스마르크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이 내적 선교회는 독일에서 가장 큰 신앙고백적 복지 기관으로 성장하고 독일의 사회복지국가로 도약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 후 1919년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의 틀을 마련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복지체계의 장치로써 사적인 것과 공적인 부분으로 한 이중적 체계(dual System)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디아코니아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1929년 세계의 경제위기는 독일에도 경제난으로 이어지고 디아코니아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33년부터 국가사회주의에 의한 제 3제국 시기는 디아코니아의 암흑기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제 3제국의 국가사회주의 폭압아래 독일의 교회는 다시금 진정한 의미에 있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거듭 질문을 하게 되었다. 특히 고백교회를 통해 저항운동을 하였던 이들을 중심으로 전쟁이후의 새로운 교회에 대한 구상을 실현해 나간다. 그리고 종전이후 고백교회운동의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트레사에서 개신교 원조국(Evangelisches Hilfswerk)를 세우게 되는데, 이를 중심으로 전후의 복구 작업을 교회가 전면에 나서 신속하게 해나간다. 이는 독일교회의 영적 물질적 교회의 재건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중심모토는 교회 자체를 “행동속의 교회(Kirche in Aktion)”로 이해하는데 있었다. 이어 1948년 독일교회총연합(EKD)이 결성될 때, 교회법 정관 안에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이자 삶의 표현”이라는 조항을 명시화하기에 이른다. 이후 1957년 내적선교회와 개신교원조국은 하나의 기관으로 융합하기로 합의하고 서로의 폭을 좁혀 나아가다가 1975년 오늘의 독일 개신교 사회 봉사국(Diakonisches Werk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으로 합치된다.
섬김 실천, 하나의 거대한 공룡 독일의 사회복지 체계는 6개의 중요한 협회에 의하여 구성되어 진다. 즉 1848년 개신교의 디아코니아를 필두로 1897년 가톨릭의 카리타스, 1919년 독일 유대인 복지센터, 1921 독일 적십자, 1924년 노동자 복지 조합, 독일 평등복지 사업협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모든 단체는 1924년 독일 “자율 복지 기관 연맹(Federal Association of Free Charitable Organisations)"이라는 기구 안에 속하여 있다. 여기에 속하여 있는 기관은 1996년도에 93,500개에 달한다. 이중 개신교 사회복지기관인 디아코니아 기관은 약 31,000개이며 45만 여명의 직원이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40만 명 정도의 자원 봉사자 들이 4300여개의 동아리로 구성되어있고 하루에 100만 이상의 의료침대나 수혜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섬김사역에 18,000개의 교회가 이 섬김의 사역에 연대하고 있으며 25개의 주교회(Landes kirche)와 9개의 자유교회(Freikirche) 그리고 90개의 전문협회가 독일 개신교 사회 봉사국에 속하여 있다. 150년의 역사를 통한 사랑의 혁명은 마치 공룡처럼 거대한 섬김기관으로 독일 전역에 하루 백만 명의 도움처소와 도우미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한국의 어떤 목사들은 독일과 유럽의 교회가 죽었다고 예단하고 독일 여행 중 라인 강변의 성에 올라가 죽어가는(?) 독일 교회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는 해프닝도 벌였다고 한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가! 독일교회 교인들의 75%이상이 교회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디아코니아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섬김실천에 대한 열망으로 오늘의 거대한 개신교 사회봉사국이 존재하는데, 독일 교회는 정말로 죽은 것인가.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생명의 표현이다. 어떻게 그러한 생명을 피워낼 수 있었던가! 그 자체가 하나의 학문의 대상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21세기에 새로운 섬김실천을 해 나갈 것인가, 그것이 하나의 학으로 정립되어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놀라움이다.
섬김, 하나의 학으로! 섬김학은 섬김을 실천하기 위한 이론으로써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연구를 심화해 가고 있다. 디아코닉(Diakonik), 내적 선교를 위한 학문(Wissenschaft von der Innere Mission) 혹은 디아코니아학(Diakoniewissenschaft)은 19세기 중반 이래 신학, 특히 실천신학과 관련되어 발전되어 나왔다. 이전에 이미 요한 힌리히 비헤른은 내적선교에 관한 이론을 목사교육과정에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다음 독일의 중요한 실천신학자들, 예를 들어, 본 대학의 실천 신학교수 였던 칼 임마누엘 니츠(1787-1868)는 특히 19세기 비텐베르크의 교회의 날 행사 때(1848) 비헤른(1808-1881)의 즉흥연설로 인해 촉발된 내적 선교(Innere Mission)의 디아코니아적 선교적 사회적 실천의 학문적 신학적 성찰을 실천신학 안에 통합했다. 1857년 그의 실천 신학의 조직체계 구상 중 세 번째 편의 첫 부분에 “내적 선교와 관련한 개신교적 목자직의 고유한 목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때 이후로 내적 선교 즉 디아코니아는 설교나 예전, 목회 그리고 종교교육처럼 교회의 실천영역으로서 실천신학적 교재에 포함되어진다. 그는 당시 기존 교회의 목사들과 내적 선교의 사역자들과의 경쟁관계를 화해시키는 가교역할을 하고자 했다. 독일 알토나 디아코니아기관 대표이자 내적 선교의 전문지 주간이었던 테오도아 쉐퍼는 1883년 신학적 학문 안내서에서 신학적 학문이라는 나무에 갓 나온 가지인 독자적 학문으로써 “섬김학(Diakonik)”을 주창하였다. 다시 말해 섬김학을 목회론과 교회헌법교설과 함께 실천신학의 독립된 학과로 주창했다. 이러한 입장을 지닌 쉐퍼는 1888년 그라이스발트 대학의 실천신학 교수직의 요청을 거부한다. 이런 과정에서 독자적 학과로써 섬김학의 도입은 미루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신학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튀빙겐 대학의 파울 부스터(1860-1923), 그리고 베를린 대학의 프리드리히 마링(1865-1933)은 내적선교의 주제를 독립적 교재의 영역에 다루었다. 또한 1920년대에는 국가적 복지체계와 자율적 복지체계의 이중적 구조의 형성으로 디아코니아적 실천이 활성화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디아코니아학도 발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까지 내적 선교를 위한 학문이 실천신학 안에 자리 잡은 것이라면 이제는 조직신학과 교회사 연구 속에 섬김학이 발전되어 나갔다. 그 결과 베르린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이자 1923년 이래 독일 개신교의 내적선교회 중앙위원회의 의장이었고 디트리히 본회퍼의 스승이었던 라인홀트 제베르크 교수는 1927년 “사회윤리학과 내적선교를 위한 학문을 위한 연구소”를 세웠다. 그러나 1938년 국가사회주의를 통하여 연구소는 폐쇄되고 디아코니아학적 연구 작업은 쇠퇴의 길로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1954년 2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신학부에 디아코니아학 연구소가 새로이 시작되면서 독일과 유럽의 디아코니아학적인 연구와 교육은 다시금 활기를 찾게 되었다. 이를 통해 1920년대 내적 선교의 학문이 지향하고자 했던 디아코니아학적인 광범위한 주제와 다양한 방법론이 발전되어 나갔다. 이 연구소가 비록 실천신학의 구성요소였지만 연구소의 소장들, 즉 허버트 크림, 파울 필리피 그리고 특히 테오도아 슈트롬은 각각 신학적인 면에서 사회윤리, 디아코니아 역사, 성서적 근거를 위한 주석적 연구에 연구를 강화시켜 나갔다. 이를 통해 20세기의 말엽에 비로소 독일과 유럽에 디아코니아학적 영역에 있어서 몇몇 대학 안에 새로운 기조를 형성할 수 있었다. 독일 개신교의 섬김실천과 섬김학은 독일의 사회국가를 형성해 나가는데 커다란 동력을 제공하여 왔다. 특히 섬김학은 신학 전반에 걸쳐 섬김의 실천을 위한 신학이론의 재정립을 통해 디아코니아 현장에 적용하고 이론화하는 과정을 거쳐 왔다. 1990년 이래 섬김학은 유럽통합과정과 함께 독일과 유럽에 하나의 붐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독일을 위시한 북유럽의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유산인 ‘섬김의 신학’을 ‘섬김의 실천’으로 구체화해, 사회국가가 갖는 연대와 정의를 사회 속에 장착해 나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역사적 실험은 유럽 통합 과정에서 ‘섬김’이라는 사회통합적 에토스를 유럽 전역에 확대해 나가고 있다. 거대한 대륙을 섬김의 문화와 체계로 만들어 나간다는 환상적인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십여 년 전부터 급격한 변화와 함께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심아래 사회복지의 강화로 이어져 왔다. 특히 북유럽의 사회국가 시스템이 하나의 모델이 되어 이 땅에 복지혁명을 실현해야 한다는 간절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섬기는 정부로 새로이 출범한 새 정부는 지금까지 지난하게 장착해 왔던 복지내용의 궤도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와 신학은 섬김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실천적 모색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의 사회적 섬김의 책임을 감당해 나가고 구체적인 섬김의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즉 섬김에 대한 성서적 근거, 교회사적 근거, 신학적 근거들을 심도 있게 정리해나가고 시민사회와의 건강한 연대를 강고히 해나감으로 진정한 의미의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나는 한국 개신교가 ‘섬김’이라는 에토스를 통하여 한국 사회에 새로운 사회적 문화형성을 구축하는데 기여하기를 고대해 본다. 이러한 기독교의 섬김은 단순히 말에 있지 않고 사회 정치적 책임을 넘겨받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섬김의 신앙은 평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현존하는 이 땅의 곤경을 제거해 나가는 것에 의해 측정된다. 더 나아가 이웃을 섬긴다는 것은 사람이 살만한 세상구조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고 파괴적인 구조를 철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구조 안에서, 구조를 통하여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건강, 교육, 가계수입, 노동, 노후생활 등 위기 영역에 사랑이 운동하여 사회연대적 문화, 섬김의 문화가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한다. 이 길만이 천박한 개독교에서 건강하고 당당한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로 일어서는 첩경이 될 것이라 감히 생각해본다.
홍주민 l 교수는 한신대 신학대학원, 하이델베르크대학교(Dr. Theol)에서 섬김학과 신학을 공부하다. 지금은 한신대 연구교수로 있다. 역서로 『디아코니아신학과 실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