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전문과정의 목회자 양성 교육기관

50년 역사 대한신학의 정통 보수신학을 지향합니다.

목회자료실

365일 전화문의

010-3078-9991

010-8014-5979

후원계좌안내

351-0966-1886-13 입금은행 : 농 협 예금주 : 한국심리상담학회

사역자료실

목회자료실 민중신학적 구약성서해석
2013-07-10 00:00:00
관리자 조회수 788
 
민중신학적 구약성서해석
임태수


I. 민중신학적 성서해석방법(Minjung Approach)

민중신학적 성서해석의 핵심은 민중의 자리에서 ‘민중의 눈’, ‘민중의 시각’으로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성서읽기를 위해서 민중신학자들이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해석방법들이 있다. 그 방법들은 역사적-비평적 방법, 경전 통째로 읽기, 사회경제사적 방법 등이다. 민중신학적 성서해석방법(Minjung Approach)은 넓은 의미로는 역사적-비평적 방법, 경전 통째로 읽기, 사회경제사적 방법 등 보조적인 방법론 모두를 포함한 방법론을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를 의미한다. 민중 성서읽기의 핵심인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의 방법에는 모든 민중신학자들이 동의하고있지만, 보조적인 방법론들에 대하여서는 민중신학자들 사이에서 학자들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필자가 생각하고 사용하고 있는 보조적인 방법론들, 즉 역사적-비평적 방법, 통째로 경전읽기, 사회경제사적 방법 등을 먼저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와 그 구약성서해석의 사례들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역사적-비평적 방법과 그 한계
‘역사적-비평적 방법’(Historisch-Kritische Methode)은 이미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싹트기 시작해서 19세기에 활발하게 전개되어 오다가 20세기 중반에 절정에 달한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은 그때가지 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얽매여 있던 성서해석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성에 의하여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성서해석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본문비평, 문헌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 등 역사비평방법은 성서연구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성서본문의 역사적 배경, 저자의 시대나 의도등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성서를 연구함에 있어서 이 역사비평방법을 거치지 않고 뛰어넘는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성서신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듯이 역사비평방법은 성서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많은 문제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역사비평의 약점은 이 방법을 사용하는 성서학자들의 견해가 너무 복잡하고, 동일 사안에 대한 학자들 간의 견해차이가 너무 커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래서 성서학자 자신들마저도 전체 연구동향을 정확히 알기 어려울 정도다. 목사들도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침묵하기 일쑤고, 더군다나 평신도들, 민중들이 이런 연구방법에 접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역사비평방법은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서의 권위에 커다란 손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큰 단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게르하르트 마이어(Gerhard Maier)는 역사비평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① ꡒ경전 중의 경전ꡓ(Der Kanon im Kanon)을 찾으려는 오랜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② 이차문서를 일차문서와 구별하고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경전적 가치를 박탈하고, ③ 그 결과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성서의 복음선포의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역사비평의 시대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극언하면서 역사비평시대의 종언을 선포했다. G. Maier, Der Ende der historisch-kritischen Methode (Wuppertal, Deutschland 1974, 1978), 10-12, 21-36, 45-46). 그는 역사비평의 대안으로서 ꡒ역사적-성서적 방법ꡓ(Historisch-biblische Methode)을 제안한다(47-92). W. Wink도 Bible in Human Transformation (Philadelphia: Frortress Press, 1973), p. 1에서 "역사비평방법은 파산되었다“고 선포하였다.
G. 마이어 보다 훨씬 이전에 K. 바르트는 역사비평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역사바평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즉 그는 역사비평이 성서본문의 배경, 전역사(prehistory)를 추구하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강조한 나머지 성서본문을 수정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를 비판하면서 역사비평의 올바를 과제는 어디까지나 성서본문 자체의 참 뜻(veritas scripturae ipsus)을 밝히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K. Barth, Church Dogmatics Vol. I.2, 492-495.
B. S. 챠일즈는 역사비평방법이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였다: ꡒThe effect was actually to destroy the significance, integrity, and confidence in the literal sense of the text.ꡓ B. S. Childs, “The sensus literalis of scripture: An Ancient and Modern Problem,” in: Beiträge zur alttestamentlichen Theologie, Festschrift W. Zimmerli, 1977, p. 92.

이와 같이 역사비평방법을 비판하고 나선 챠일즈(B. S. Childs)는 그 대안으로서 ‘경전적 접근방법’(canonical approach)을 제안하였다. 필자는 그의 경전적 비평방법(canonical criticism)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인 면에서 공감하면서 역사비평방법의 약점을 어느 정도 보완해 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필자의 성서해석방법의 하나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2. 경전 통째로 읽기(Holistic Reading of the Canon}
챠일즈는 그의 논문 ꡒInterpretation in Faith" B.S. Childs, ꡒInterpretation in Faith,ꡓ Interpretation 18 (1964), 432-449.
에서 역사비평의 구약성서 연구와 주석의 근본적 과오가 성서를 다른 일반 문헌과 마찬가지로 다룬 데 있었다고 보았다. 성서는 아무런 신학적 입장 없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볼 것이 아니라 뚜렷한 믿음(faith)의 틀 안에서 출발할 때 만이 성공적인 신학작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챠일즈는 루터나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구약성서를 읽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신구약 성서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증언하는 책이라는 기독교 신앙(christian faith)을 전제하고 성서를 읽었다고 강조한다. Ibid., 437.
그는 1970년에 출판한 「위기에 처한 성서신학」이란 책에서 미국의 성서 신학운동의 부흥과 쇠퇴의 역사를 조감하고 비판한 다음. B. S. Childs, Biblical Theology in Crisis (Philadelphia, 1970), 13-87.
새로운 성서신학을 제시한다. Ibid., 91-147 참고.
그는 “교회의 경전은 성서신학을 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콘텍스트” Ibid., 99.
라고 말하므로써, ꡒ교회의 경전은 신학적 해석의 표준이요 규범ꡓ이라는 그의 신학의 중심 사상이 탄생한다. 그는 경전을 강조하면서 영감설을 새롭게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Ibid., 103 참고.
즉 성서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인간이 비준하여 성서의 권위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재천 명하면서 초대 교회의 영감설은 책임있는 신학적 해석을 위하여 오늘날도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역사비평방법의 폐해로부터 벗어나서 올바른 성서해석을 하기 위하여서는 ① 성서영감설을 반대하는 어떠한 학설도 거절해야 하며, ② 성서가 본래 가지고 있는 권위와 거룩성(Heiligkeit)을 보존해야 하며, ③ 성서해석에 성령의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챠일즈는 말한다. B. S, Childs,ꡒThe sensus literalis of scripture:An Ancient and Modern Problem,ꡓ 93.

또 챠일즈는 1977년 독일 괴팅엔에서 개최된 국제 구약학회에서 행한 강연에서 역사비평방법은 구약 텍스트의 올바른 이해를 그르치며 경전의 최종 텍스트의 의미를 오도한다고 역설하였다. 즉 양식비평과 자료분석은 텍스트를 산산조각 내버림으로써 최종 텍스트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하며, 텍스트의 前역사(prehistory)는 부수적인 것이요 최종 형태(endform)만이 하나님의 계시의 증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구약정경개론」 B. S. 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Philadelphia, 1979)
에서도 같은 주장을 한다. 또 역사 비평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지만 그 대가는 너무 비싸며, 그 결과는 불확실성과 혼란을 가져오고 성서신학을 ꡒ추측 학문ꡓ이 되게 할뿐이라고 이를 비판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ꡒ경전을 존중하여야 한다ꡓ(Take the canon seriously) 고 말한다. 정경화 과정 전체 즉 자료를 모으고, 선택하고 편집하는 역사적, 신학적 과정 모두가 하나님의 명하신(divine imperative) 일이므로, Ibid., 58-9.
이른바 역사비평에서 말하는 이차, 삼차문서를 가리지 말고 성서 전체 텍스트에 나타난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르트는 1918년에 쓴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ꡒ역사비평적 성서연구방법은 타당한 방법이다....그러나 나더러 역사비평방법과 전통적인 성서영감설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성서영감설을 택하겠다. 왜냐하면 영감설이 더 크고 깊고 중요한 타당성(das grössere, tiefere, wichtigere Recht)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K. Barth, Der Römerbirief (Zürich 1918, 1978), V.
고 말했는 데, 이는 바르트가 역사비평의 도움을 받아 성서를 보면서, 동시에 성서의 영감설을 믿고 성서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겠다는 의미이다.
B. S. Childs의 뒤를 이어서 독일에서도 F. Crüsemann, R. Rendtorff, E. Zenger, N. R.Lohfink, E. Blum 등도 “경전적 성서해석”(Kanonische Schriftauslegung), “최종본문주석”(Endtextexegese), “통째로 읽기”(Ganzheitliche Lektüre) 등의 이름으로 경전을 최종형태(Kanonische Endgestalt)로 읽고 연구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필자도 10여 년 이상을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설교를 하고 성서를 가르치면서 역사비평방법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대안을 “경전 통째로 읽기”의 방법에서 찾게 되었다. 필자가 이 방법에 더욱 애착을 갖는 것은 민중신학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중들은 오경의 J, E, D, P자료나, 복음서의 Q자료, 마가자료, 누가자료, 마태자료 등을 구분해서 읽을 줄을 모른다. 성서는 기독교의 경전이다. 민중들은 최종형태인 현재의 경전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민중들에게 필요한 성서읽기는 경전인 성서를 현재의 형태대로 통째로 읽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신학자들도, 목사들도 민중들과 같은 눈 높이에서 성서를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의 성서읽기는 경전인 성서를 현재의 형태대로 통째로 읽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3.사회경제사적 성서해석
지금까지의 성서해석은 주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성서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경전이므로 당연히 종교적인 측면에서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는 선입관이 작용한 것이다. 물론 종교적인 관심은 성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측면이 성서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성서에서 종교적인 측면만을 본다면 우리는 성서의 극히 제한된 일부 측면만을 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성서는 인간의 역사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서를 볼 때 일차적으로 종교적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하겠지만, 결코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인간은 종교적인 동물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동물이요 사회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성서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결코 종교에만 관심을 갖는 인물들이 아니다. 종교적인 인간임과 동시에 정치와 경제생활을 동시에 해나가는 인간들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인물들과 그들의 삶을 기록한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을 다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사회, 정치, 경제적인 차원까지를 포함해서 성서를 보게 해주는 방법이 사회경제사적인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을 창도한 서남동과 안병무는 민중신학의 한 방법론으로서 성서, 그리고 성서가 말하는 인간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사회경제사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서남동은 사회경제사적인 방법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사회경제사적 혹은 정치경제사적 방법을 적용하므로써 비로소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제약조건들이 분명해 지는데, 여기에서 민중의 역사가 밝혀진다면 문학사회학적 방법을 적용하므로써는 민중의 ‘사회적 전기’. 민중의 집단적 영혼, 민중의 의식과 그들의 갈망들을 우리는 들여다볼 수 있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한길사, 1983), 48.


1970년대에 한국에서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신학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민중신학자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일이었고 한국 신학사에서 획기적인 일이기도 하였다. 민중신학은 이 방법을 사용하므로써 그 동안 보지 못하던 성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성서에 나타난 민중들의 억압과 착취와 수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살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경제사적, 정치경제사적인 성서읽기에서 얻어진 관점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사회와 세계의 민중현실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물론 아래에서 소개할 사회학적-유물론적 해석학자들의 해석방법이나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성서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여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데 사회학적인 방법에 동의할 뿐이다. 사회학적-유물론적 해석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1) 사회학적 성서해석
사회학적으로 구약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였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M. 베버의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5)이 나온 이후부터였다. 특히 그의 「고대 유대교」(1921)는 구약의 사회학적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에 유럽에서는 주로 롯스(A. Lods)와 메네스(A. Menes)가, 미국에서는 왈리스(L. Wallis)와 그라함(W. C. Graham) 등이 베버의 원리를 적용해 구약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멘덴홀, 브루그만, 갓월드 등이 사회학적 해석을 시도하여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에 관한 종래의 두 가설, 즉 정복설과 이주설 대신 제3의 가설인 혁명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외에도 사회학적 방법으로 성서연구를 하는 구약학자들로는 B. O. 롱(Long), R. R. 윌슨(Wilson), 좀 더 자세한 사회학적 해석에 대하여서는 졸저, 「구약성서와 민중」 (한국신학연구소 1993) 15-21을 참고하라.
F. S. 프릭(Frick), H. 모투(Mottu), P. A. 버드(Bird), C .L. 마이어스(Myers) 등이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사회학적 해석방법은 사회 이론가인 뒤르껭(Durkheim)이나 막스 베버, 마르크스 등의 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ꡒ뒤르껭의 사회적 사실들로서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이해, 사회 내에서의 노동의 분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베버의 경제와 종교간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전통적, 카리스마적, 관료적 형태에 대한 분석, 끝으로 마르크스의 생산양식의 분석과, 사회구조나 이념의 조건이 되는 경제의 영향력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들” N. K. Gottwald, ꡒ구약성서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ꡓ안병무 편 「사회학적 성서해석」 20-21.
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문학비평, 양식비평, 전승사 비평 등 전통적인 성서 연구방법 등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들의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과정들에 관심한다. ② 사회학적 주석은 역사적 사건들이나 사회적 규범들, 그리고 종교적 상징들로부터 귀납법적으로 사회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사회과학적 서술은 단순히 신학적 서술에 멈추기를 원치 않고 사회학적 방법으로 얻은 진리를 구체적인 현실 문제 해결에 적용하기를 바란다. 이런 점에서 이 방법론은 해방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ꡒ행동ꡓ 신학이라 할 수 있다.

2) 유물론적 성서해석
1970년대 이후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ꡒ유물론적 성서해석ꡓ(materialistische Bibelinterpretation)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주로 평신도 그룹이, 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등지에서는 대학이나 대학생 교회에 기반을 둔 신학자들이 유물론적 성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ꡒ유물론적 성서해석ꡓ이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사적, 유물론적 분석방법과 문학적 구조주의를 사용하여 성서의 사회상을 해석하려는 방법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ꡒ유물론적ꡓ(materialistisch)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변증법적­역사적 유물론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회 분석 방법론을 받아들여 사용한 데서 이런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성서는 인간을 세계 밖에 앉아 있는 추상적 존재로 보지 않고 인간의 육체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 성서는 인간이 정신적 존재임을 물론 부인하지도 않으며, 그러나 동시에 그런 존재로 일방적으로 절대화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면 성서는 인간을 단순한 정신적 존재만으로 보지 않고, 역사와 사회적 삶의 관계 속에 있는 구체적 존재로 파악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유물론적 해석방법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성서를 단순한 문학적 산물로 보고 문헌학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데서 탈피하여, 사회사적인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하므로써 당시의 실생활을 재건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성서에 나타난 경험과 신앙, 희망 등을 보다 분명하게 실제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유물론적 성서해석이란 ꡒ생산 관계 내지 권력관계를 결코 무시하지 않고, 상황을 분석함에 있어서 경제, 정치, 그리고 이데올로기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는 해석을 말한다.” G. Casalis, ꡒ마르코 복음서의 실사적 해석,ꡓ 「신학사상」 46집 (1984), 934.
그리고 유물론적 성서해석은 실천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으로 보고 실천을 참된 인식론적 원리로 본다. 따라서 유물론적 성서해석은 중립적인 입장에 서기보다는 사회의 약한 자, 가난한 자, 억눌린 자 등 비혜택 계층의 편에 서서 성서를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를 주로 피지배자의 역사로 이해한다. 유물론적 해석은 모든 인간의 구체적 해방을 그 목적으로 한다. 유물론적인 해석을 주도하는 유럽의 학자들로는 벨로(F. Belo), 끌레브노((M. Clevenot), 까잘리(G. Casalis), K. 퓌셀(Füssel)은 W. 쇼트로프(Schottroff), 케글러(J. Kegler), 크뤼제만(F. Crüsemann) 등이 있다.

4.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 방법은 좁은 의미의 민중비평방법(Minjung Criticism)이요 민중신학적 성서해석방법의 핵심이다. 위에서 말한 보조적인 방범론들은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아무리 이러한 보조적인 수단들이 있다 할지라도 이 핵심적인 방법인 좁은 의미의 민중비평방법 즉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가 없다면 민중신학적 성서읽기는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야 말로 민중신학적 성서해석의 핵심 중의 핵심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민중비평이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방법론들을 똑같이 사용한다 할지라도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민중신학적 성서읽기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에서는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의 기본 전제/원리(axiom) 네 가지만을 간단히 언급하고, 이 원리/전제를 이용한 구약성서해석의 예들을 인물 중심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1) 하나님의 백성 민중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민중이란 말이 많이 쓰여 왔고,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ꡒ민중이 누구냐ꡓ하는 데 대한 논의도 상당히 많이 전개되었다. 지면 관계상 그 동안 전개되었던 민중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기로 하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하는 민중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명제로 요약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며 사회적 실체이다.
(2) 민중은 정치적 피억압자, 경제적 피수탈자, 사회적 소외자 등 사회의 하류층이다.
(3) 민중은 자각된 대중(민중)뿐만 아니라 우매한 대중(민중)도 포함한다.
(4) 민중은 역동적이며 상대적인 개념이다. 상대에 따라서는 비민중이면서 동시에 민중적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
(5) 민중은 예수와 동등한 메시아는 아니지만, 메시아적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졸고, ꡒ민중은 메시아인가? - 안병무의 민중 메시아론을 중심으로,ꡓ 「민중은 메시아인가」 (서울: 한울, 1995), 86-100; ꡒ서남동의 예수이해, 민중이해에 대한 새로운 고찰,ꡓ 「민중은 메시아인가」(서울, 한울 1995), 122-125,

(6) 민중이 주체가 된 나라는 전국민이 민중화된 나라 즉 정의․평등․자유․평화의 나라이다.

2) 민중의 하나님, 민중의 예수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는 민중의 하나님이요 민중의 예수다.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는 일차적으로 민중의 편에 서는 하나님이요 예수다. 하나님과 예수는 비민중, 반민중도 궁극적으로 구원받기를 바라고 있다. 반민중이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할 때 하나님은 민중 편에 서서 민중을 억압자들로 부터 해방하고 구원하신다. 예수는 참 하나님, 참 사람, 메시아로서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을 구원하고 해방하신다. 하나님의 민중편향적 사랑은 형과 아우의 싸움을 말리는 어머니의 사랑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형이 아우를 부당하게 때릴 때, 어머니는 와서 싸움을 말리고 형을 책망하고 동생을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 주고 위로해 준다. 이 경우 어머니는 동생만 사랑하고 형은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다른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어머니는 부당하게 때리는 형은 책망하므로써 바른 형이 되게하는 형식을 통하여 사랑하고, 동생은 싸매주고 위로하므로써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민중 사랑도 이와 같다. 하나님, 예수는 아우와 같은 처지에 있는 민중을 편들고 구원하신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민중, 반민중의 구원의 길도 열리는 것이다.

3) 아래로부터 성서읽기(Bible Reading from Below)
성서는 기독교의 유일한 경전이다. 그러나 성서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성서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해석자가 어떠한 자리에서 성서를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주후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승격시킨 이후 성서해석은 대체로 기존 지배체제를 재가하고 옹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교회를 가톨릭 교회로부터 해방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교회로 하여금 농민이나 피지배자의 편에 서게 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생겨난 ''역사비평적 방법''은 그 때가지 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얽매여 있던 성서해석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성에 의하여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성서해석에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이 역사비평방법도 그 수행자 대부분이 서구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시각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유지하는 차원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서해석은 성서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성서는 지배자, 기득권자를 옹호하고 저들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지배체제를 영구적으로 존속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기록된 책이 아니라, 이와는 정반대로 저들에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피지배계층 사람들, 즉 민중을 해방하는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위에서 내려다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책이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아야 보이는 책이다. 민중신학적 성서읽기는 민중적인 시각 즉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성서읽기이다.

4) 실천을 위한 성서읽기
민중신학은 탁상 위에서 생겨난 신학이 아니다. 민중운동 현장에서 생겨난 신학이다. 이것은 민중신학의 실천우선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민중신학은 단순히 신학이론을 위한 신학이 아니다. 민중신학은 실천을 위한 신학이다. 따라서 민중성서읽기도 단순한 지식습득을 위한 성서읽기가 아니다. 실천을 위한 성서읽기다. 민중성서읽기는 그 동안 제도교회가 초월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얻을 수 있다는, 이른바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성서읽기다. 종교개혁자 루터에서부터 시작된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구원을 얻는다”는 사상은 5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개신교회의 신학의 핵심사상으로 개신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ꡒ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ꡓ는 종교개혁사상은 개신교회에 행함을 배제하고 공허한 믿음만을 남겨 둔 결과를 낳았다. 이 사상은 기독교를 실천과 윤리적 차원이 결여된 신앙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름이 없는 ꡒ값싼 은혜ꡓ 만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행함부재의 기독교, 윤리적 가치 결여의 기독교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하여 민중신학은 실천우위의 구원론을 제창하였다. 서남동은 ꡒ성령론적 구원론ꡓ을 말하였는데, 이는 신인협력적 구원론으로서 예수의 영인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는 수직적 차원과, 인간의 행함을 강조하는 수평적 차원이 결합하여 구원을 이루는 구원론을 의미한다.
예수는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비유에서도 최후심판의 기준이 주린 자, 목마른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를 돌보았느냐 돌보지 않았느냐, 즉 행함여부임을 말씀하셨다. 야고보서 2장 14절에서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야고보서 2장 24절에서는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고 말하므로써 기독교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과 행함이 다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말한 예수의 말씀과 야고보의 말을 종합해 본다면 “믿음없이 구원없다”는 말도 맞지만, 또한 동시에 “행함없이 구원없다”는 말도 성서가 말하는 진리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민중신학은 행함, 실천을 강조하고, 성서읽기도 행함, 실천을 전제로 하고 있다. 행함을 강조하는 민중신학은 제2의 종교개혁을 지향하고 있다.


II. 민중신학적 성서해석의 예들

한국에서 민중신학적 성서해석을 시도한 구약학자들로는 김정준, 문익환, 민영진, 문희석, 서인석, 그리고 필자 등이 있다. 서남동은 비록 구약학자는 아니지만 다른 누구 보다도 먼저 구약성서를 민중신학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구약학자들에 앞서 서남동의 민중신학적 구약성서해석을 먼저 소개하고, 이어서 김정준, 문익환과 필자의 구약성서해석의 사례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1. 서 남 동
서남동은 민중신학의 전거로서 구약에서는 출애굽 사건, 신약에서는 십자가 사건을 든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서울: 한길사, 1983), 51.
구약성서에서 민중신학의 전거를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민중신학의 탐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남동이 말하는 구약성서의 민중신학적 전거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1) 믿음의 증인의 전통
서남동은 히브리서 11장의 기록을 ꡒ믿음의 증인의 전통ꡓ이라고 본다. 이 믿음의 증인들은 아담, 하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삼손, 입다, 사무엘 등인데 이 믿음의 증인들이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민중이라고 서남동은 해석한다. Ibid., 37-39.
즉 믿음의 전통은 민중운동의 족보이다. Ibid., 44.


2) 출애굽사건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의 해방사건이다. 당시 대제국인 이집트의 학정에 시달리던 최하층의 히브리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반란을 일으키고, 그리고 탈출한 역사적 사건이 출애굽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실제적인 역사에 뿌리박고 있는 정치적 사건이라는 물질적 차원은 배제하고 종교의 영역에만 국한시켜 버렸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민중신학의 성서적 전거가 실제적이라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Ibid., 51, 235..
여기에서 서남동은 출애굽 사건이 교회에서 정신적․종교적으로만 해석되고 있으며 실제 역사적․정치적 해방사건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출애굽사건의 역사적 사실 차원을 되찾을 것을 강조한다.

3) 히브리
서남동은 다음으로 히브리 사람들이란 의미를 성서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히브리라는 말은 고대 근동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하비루라는 말과 같은 말이며, 그 당시 하비루는 최하위층 사람들에 대한 칭호였다. 그것은 제국 사회의 지배질서에서 벗어나 시민권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천민이나 유랑민에 대한 칭호였다. 따라서 히브리 사람들은 사회학적인 개념에서 볼 때 일정한 지배질서의 테두리 밖에 있는 천민, 즉 거지 떼들인 것이다. 이들은 어떤 때는 도둑이나 비적도 되었는데 그들은 자신이 처한 처지나 억울함을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한 민족은 아니었지만 이 지방 저 지방을 떠돌아 다니다가 어떤 계기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형성될 때 거기 결합된 것이다.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로 노예로서 토목공사를 하고 헐벗고 짓밟힘을 당한 히브리 사람들이었다. Ibid., 236-7.


4) 야훼 하나님
야훼 하나님은 이러한 히브리 사람들, 즉 노예의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킨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야훼 하나님이 후대의 다윗 왕을 비롯한 여러 지배자들에 의하여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시키는 보호신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본래는 이 세상에서 인권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의 인권을 찾아주던 사람들의 신이었는데, 후에 권세자가 나타나 통치하면서부터 그 통치자의 통치권을 정당화시켜주는 지배신이 되어버렸다. Ibid., 238.
여기에서 서남동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릇된 이해를 민중신학적인 입장에서 구별한다.

5) 가나안 정착
서남동은 가나안 정복을 정복설과 혁명설을 종합한 것으로 이해한다. 가나안에 살고 있던 하비루인들은 애훼의 법궤를 메고 가는 히브리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는 것도 보았다. 가나안의 봉건제도의 군주들에게 모든 것을 착취 당하며 살고 있던 차에 애훼를 믿는 군대들, 자기네와 같은 신세의 군대들이 쳐들어 왔다. 이들과 합세하면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래서 내부에서 호응하였다. 안에 있던 하비루들, 즉 현대적 의미의 히브리인들이 밖에서 공격해 들어간 히브리인들과 한 묶음이 되어 가나안의 지배질서 즉 사회체제가 바뀌었고, 이와 같이 성립된 새로운 사회질서가 이른바 ꡐ12부족동맹ꡑ이다. Ibid., 238-9.


6) 사사시대
서남동은 사사시대를 평등공동체로 규정한다. 그리고 계약법전은 이 시대에 맺어진 법률제도로서 평등공동체를 지향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본다. 출 20:22-23:33에 나오는 계약법전의 내용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한다. 돈을 꾸어 써야 할 사람은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이므로 이자를 받지 말라고 규정한다. 안식일도 일 안하는 부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십일조도 가난한 레위인과 고아나 과부를 위한 것이었다. 안식년도 가난하고 병들어 토지를 저당잡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토지를 다시 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계약법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민중신학의 탐구」 185-186. 216에 있다.
이와같이 사사시대는 왕제도도 아니고 중앙집권제도 아닌 민주적인 평등공동체였다.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239-240.
그는 사사시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서 민중신학의 성서적 전거로서 <구약성서>에서는 출애굽 사건만을 제시했으나 내가 Gottwald의 를 읽은 다음에는, 출애굽사건 못지 않게 가나안 정착과정, 곧 왕조 이전의 ꡐ원 이스라엘ꡑ의 공동체 형성, 특히 밖으로는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이 봉건체제와 싸우면서 부족간의 평등한 동맹을 결성하며, 안으로는 출애굽기 20-22장에 기록된ꡐ계약법전ꡑ(BC 12세기에 완성)에 새겨진 대로 가난한 자, 떠돌이, 고아, 과부, 노예의 인권을 위주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게 되는 ꡐ원 이스라엘ꡑ이 구약성서의 역사적 원계시로서, 민중신학의 성서적 전거의 핵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Ibid., 55.


우리는 여기에서 서남동이 구약성서를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전혀 새롭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지배자적인 관점의 종래의 구약이해를 민중 중심의 구약으로 이해한다. 물론 서남동의 이러한 구약이해는 국내외의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존한 것이다. 그러나 서남동이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지배자 중심의 역사에서 철저히 민중중심의 역사로 이해하므로써 민중신학의 구약성서해석에 큰 기여를 한 사실을 결코 과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김 정 준 김정준의 민중신학에 대해서는 졸고, ꡒ만수 김정준과 민중신학,ꡓ「구약성서와 민중」 382-394 참고.

구약학자로서 김정준은 많은 저서와 논문들을 남겼다. 그 가운데서 그의 생애 말년에 쓰여진 몇 편의 논문들 즉 ꡒ민중신학의 구약성서적 근거,ꡓꡒ역사와 사건과 해석,ꡓꡒ희망: 인간 역사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의 고통,ꡓꡒ한의 신학,ꡓꡒ야웨문서의 창조설화에 나타난 인간ꡓ 등이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쓰여진 논문들이다.
ꡒ민중신학의 구약성서적 근거ꡓ는 김정준이 ꡒ민중신학ꡓ이라는 제목을 걸고 쓴 유일한 논문이다. 그 만큼 이 논문은 민중신학에 대한 그의 입장을 분명히 천 명해 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① 민중신학의 가능성 문제, ② 최초의 신앙고백과 민중, ③ 왕조사와 민중, ④ 예언자와 민중, ⑤ 시편과 민중, ⑥ 맺는 말 등 여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김정준은 여기에서 구약성서 전체를 점검한 다음 구약성서는 민중의 책이고 따라서 민중신학적 해석이 구약성서에서 가능하다고 결론 짓는다.
ꡒ희망 : 인간 역사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의 고통ꡓ과 ꡒ한의 신학ꡓ에서는 무당의 역할에서 우리 기독교인이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무당이 죽은 사람의 ꡒ한ꡓ을 풀어 주듯이 기독교인은 이 시대의 고통 당하는 민중의ꡒ한ꡓ을 풀어주는 ꡒ한의 사제ꡓ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ꡐ한의 사제ꡑ란 말은 그가 인정하듯이 민중신학자 서남동에게서 배운 말이다. ꡒ야웨문서의 창조설화에 나타난 인간ꡓ에서 김정준은 창세기 3-11장까지의 야웨문서를 다룬다. 여기에 나타난 가인의 살해사건, 홍수 이야기, 바벨탑 사건 등에서 그는 솔로몬 시대의 억압적이고 살인적인 사회상을 본다. 이러한 결과는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원역사를 비판적으로 본 데서 나온 것이다.

3. 문 익 환
문익환은 재야인사로서 통일운동에 앞장 선 민중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89년에 단독으로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을 만나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였다. 그러나 그는 통일운동가이기 이전에 구약학자였다. 문익환은 통일운동에 나서기 전에 여러 권의 구약에 관한 번역서들과 다수의 논문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논문들은 오늘 우리의 주제와는 거리가 멀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그가 통일운동을 하면서 남긴 구약성서와 관련된 유일한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책이 바로 「히브리 민중사」이다.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서울: 삼민사 1990)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민중의 역사로 보았다. 그는 이 책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고대 근동의 민중인 당시의 하비루/히브리의 전통에서 해석하고 있다. 문익환은 신학을 삶으로 사신 분이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문익환은 가장 민중신학자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문익환은 성서를 철저히 민중신학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으며, 이렇게 볼 때 통일운동가로서의 그의 삶도 바로 이러한 민중신학적인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적인 책이라고 할 수 없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가장 민중신학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중신학이 지향하는 바가 단순한 학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신학적 이론을 삶으로 살고 실천하자고 하는 것이므로, 문익환이야 말로 가장 민중신학적인 삶을 살고 학문을 한 사람이요 이 책은 문익환의 신앙고백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이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문익환을 위해서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만약 이 책이 없었다면 문익환은 통일운동가로서만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통일운동가로서의 문익환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이 책이 있으므로 해서 문익환은 단순한 통일운동가로서 뿐만 아니라 훌륭한 민중신학자로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민중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귀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문익환은 민중이 역사의 원동력임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 역사도 왕궁사 속에 묻혀 있는 민중사를 찾아야 비로소 이스라엘 역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야훼는 많은 하비루들의 신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며, 암몬의 하비루들이 섬긴 말곰 혹은 몰록, 모압 출신의 하비루들이 섬긴 그모스, 블레셋 하비루들의 다곤, 가나안 하비루들의 바알과 아스다롯(아세라) 등의 신들이 당시에 있었지만, 이런 하비루들의 신들 가운데서 야훼만을 이스라엘이 해방의 신으로 섬긴 이유는 다른 신들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쓰다듬어 고통을 잊게 하거나, 적당히 순종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슬기나 가르쳐 주는 신들이었지만, 야훼는 이런 신들과는 달리 영구적인 해방의 길을 가르쳐 주는 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문익환은 해석한다. Ibid., 29.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나이산에서 하비루들의 모든 사이비 신들을 버리고 야훼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본다. Ibid., 33.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으로 건너간 것은 침략행위가 아니고 해방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가나안 정착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가나안의 농민들은 에집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세기에 걸쳐서 싸우고 있었다. 이 때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 즉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 나온 하비루들이, 가나안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농민해방군의 해방전쟁에 가세하여 그 해방전쟁을 완성한 것이 가나안 정착과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해방전쟁의 주도권은 전쟁전문가인 출애굽한 하비루들이 가지고 있었다. Ibid., 44.
이 해방전쟁은 단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판관시대가 끝나는 때까지 20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본다.
다윗은 600여 명의 하비루 출신 부하들을 거느린 하비루였다. 그들은 불평분자들이었고 혁명세력들이었다. Ibid., 74-85.
그러나 왕이 된 다윗은 왕궁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전제군주가 되었다. Ibid., 70.
다윗은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윗이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하비루 해방군 생활을 떠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왕궁의 풍요롭고 호사스러운 생활에 빠졌기 때문이다. 해방자가 지배자기 된 데 비극의 원인이 있었다. Ibid., 109.
문익환은 책의 절반 정도를 예언자에 대하여 쓰고 있는데, 그는 예언자를 한 마디로 ꡒ하비루 농민해방군 전통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예언운동ꡓ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문 익환 자신이 생각해낸 독특한 해석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국내외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어온 여러 가지 학설들을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간단명료하게 명쾌하게 서술한 것은 분명 문익환의 탁견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4. 임 태 수
필자는 1982년에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신학 논문들을 최초로 묶어 출판한 <민중과 한국신학>을 독일 유학 중에 읽고 신학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줄곧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84년 대학강단에 선 이후 10여 년간의 연구 결과들을 모아 「구약성서와 민중」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집을 출판하였다. 그 가운데서 중요한 내용 몇 가지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구약성서와 민중」 (한국신학연구소, 1993)을 참고하라.
이 논문집이나온 이후에 쓴 논문들도 몇 편 소개하려고 한다.

1) 역대기사가의 통일신학
서구 신학자들이 역대기사가를 분리주의자로 본데 반하여, 필자는 역대기사가를 남북통일주의자로 보았다. 역대기사가가 북 이스라엘과 그 후예인 사마리아의 지도층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거부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북 이스라엘과 그 후예인 사마리아의 민중들에 대해서는 형제의식을 가지고 한 민족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견지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이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2) 민중의 편에 선 신명기사가의 통치이데올로기
이 논문에서 필자는 신명기사가가 이스라엘 역사를 민중사관에 입각해서 기술했다는 사실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논증하였다. 신명기사가는 친민중적 왕들에게는 긍적적인 평가를 내리지만, 반민중적 왕권에는 비판적이었으며, 왕들에 대한 평가도 종교 일변도적인 관점에서만 평가하지 않고, 왕들이 민중/백성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도 종교적인 측면 못지 않게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작용했음도 이 논문에서 밝혔다.

3) 잠언에 나타난 가난한 자와 부자
이 논문은 지혜문학의 하나인 잠언을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가난과 부의 내적(개인적), 외적(사회적) 원인을 민중신학적인 관점에서 사회학적으로 규명했다. 가난과 부는 개인이 게으르거나 부지런하다는 개인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원인 즉 권력자와 부자들의 억압과 착취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4) 민중․민중연대자․민중지도자
첫째 부분에서는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민중을 정의한 다음, 구약성서에 나타난 민중에 해당하는 사회계층(고아, 과부, 나그네, 임시 거주자, 품꾼, 극빈자, 약자, 가난한 자, 노예)과 인물들(아담, 하와, 아벨, 노아, 아브라함, 하갈, 이스마엘, 야곱 등)을 분류했다. 둘째 부분에서는 민중연대자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에 속한 인물들을 열거했다. 민중연대자란 비민중ㅘ 반민중 가운데서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요셉, 모세, 에스더, 이사야, 예레미야, 바울, 고넬료 등을 민중연대자로 분류하였다. 셋째 부분에서는 민중지도자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설명했다. 민중지도자란 민중운동을 조직하고 이끌어 가는 지도자를 의미한다. 참다운 민중지도자란 ꡒ민중에 뿌리박고 민중에 호응하면서 민중을 섬기는 지도자ꡓ 서남동,ꡒ씨알은 누구인가?ꡓ「민중신학의 탐구」 219.
여야 하며, 엘리트 의식을 갖지 않고 민중을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세, 기드온, 입다, 여로보암(북 이스라엘을 다윗 왕조로부터 해방시킨), 예수 등을 민중지도자로 분류하였다. 역사적 인물로는 간디, 전봉준, 말틴 루터 킹 등을 민중지도자로 분류하였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될 사실은 민중연대자나 민중지도자는 어디까지나 민중운동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고, 역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중이라는 사실이다,


Ⅲ. 맺는 말

우리는 위에서 민중신학적 방법론들 즉 역사비평방법, 경전 통째로 읽기방법, 사회경제사적 방법, 그리고 민중의 눈으로 성서읽기의 방법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민중신학적 성서해석의방법에 의하여 구약성서를 해석한 서남동, 문익환, 임태수 등의 해석의 예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현재 민중신학적 구약성서해석은 구약성서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국한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학자들이 민중신학적 구약성서해석에 참여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필자는 앞에서 말했듯이 민중신학적인 성서해석이 가장 좋은 성서해석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민중신학적인 시각으로 성서를 보고 해석하며 가르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