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전문과정의 목회자 양성 교육기관

50년 역사 대한신학의 정통 보수신학을 지향합니다.

목회자료실

365일 전화문의

010-3078-9991

010-8014-5979

후원계좌안내

351-0966-1886-13 입금은행 : 농 협 예금주 : 한국심리상담학회

사역자료실

목회자료실 사도 바울-2
2013-07-10 00:00:00
관리자 조회수 1146
 
사도 바울-2
B. 2부
3. 바울의 율법 개념
A. 율법의 유래
B. 율법의 본성
C. 율법의 역사
4. 바울의 인간론
A. 인간의 주조적 양면성
B. 인간의 육신과 영
5. 바울의 기독론
A.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B.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
C. 부활하신 그리스도
6. 바울의 성령론
A. 성령의 인격성
B. 성령의 신성
C. 성령의 동등성
7. 바울의 구원론
A. 구원의 필요성과 죄
B. 구원의 도구(복음)
C. 구원의 방법(칭의)
D. 구원의 수단(신앙, 믿음)
E. 구원의 결국(성화)
8. 바울의 교회론
A. 교회의 개념
B. 교회의 정의
C. 교인에 대한 호칭
D. 교회의 근원
E. 온전한 교회
9. 바울의 종말론(그리스도의 재림)
Ⅳ. 결 론
3. 바울의 율법 개념
회심 전의 바울의 신앙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
어려서부터 대표적인 바리새인의 가정에서 엄한 유대교 사상을 교육받고 성장한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언약이며, 축복의 약속으로 믿었다.
그의 칭의관(稱義觀)은 하나님의 약속인 율법을 지키므로 의로와지는 줄 알았다.
그는 항상 자기자신을 하나님앞에 선택받은 뛰어난 유대인 임을 자랑했다.
따라서 그의 메시야관도 다른 유대인들과 다를바 없었다.
오리라하신 "메시야"는 반드시 영광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에 오셔서, 세상 권세자들을 심판하고, 영원히 통치하실
줄만 알았다.(사9:6-7; 시89:3-4; 곌37:25; 단2:44; 눅1:32-34.)
하물며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구약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로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예수는 죽을 것을 말하며,(요12:34) 율법주의 자들의 모순점을 지적 개혁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앞에 유일한 택한 백성으로 자부하던 유대인들의 심정을 상하게 하였다.
결국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복음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대교 종교가정에서 율법으로 성장한 그는 빌립보서 3장 5절에 "내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하였다.
또, 사도행전 22장 3-4절에는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다.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옥에 넘겼노니" 하였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오리라 한 "메시야"가 예수이심을 믿게 되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던 그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
했다.(롬3:20-24; 빌3:9.)
이와 같이 그는 복음이 율법의 완성임을 믿었다.(마 5:17)
A. 율법의 유래
율법의 유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친히 기록하여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행동의 체계로서, 율법은 인간의 삶과 하나님의 의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약속으로 주셨다.(출24:12; 34:28-29.)
그러나 인간이 그 율법의 의무를 다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인간편에서 보면 수용
불가능하였다.(롬3:10-12; 약2:10.)
율법은 인간에게 완전복종을 요구하였다.(갈 3:10)
허나 인간은 율법대로 살 수 없으므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8:3-14 10:2-4.)고 바울은 서신에 기록하였다.
B. 율법의 본성
모세가 전한 율법의 본성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친히 써주신 십계명이다.
다윗은 시편 19편 7-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세가 전한 율법이 613이나 된다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의 본성에 대하여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또한 "율법은 영적인 줄 알거니와" 하였다.(롬7:1214.)
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하였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죄한 자가 되나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였다.(약2:10; 갈3:10.)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믿었다.(히 12:2)
C. 율법의 역사
회심 후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의 율법관은 180도 변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 본 율법의 역사는
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함 (롬3:19)
②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다 함 (갈3:10)
③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자 됨 (약2:10)
④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며 (롬7:1)
⑤ 율법은 죄의 권능이 되며 (고전15:56)
⑥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 (갈3:16)
⑦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으며 (히7:19 10:1)
⑧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만 하며 (롬3:20)
⑨ 율법은 믿음이 오기까지 우리를 율법 아래 매여 갇혀 있게 하며 (갈3:23)
⑩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된다 (갈3:24) 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의 역사는 예수가 오기까지 필요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율법 아래 매여있는 모든
자들을 율법에서 해방 자유케 하였다 했다.(갈3:21-23; 롬8:1-2; 히7:17-19 10:9-10,14.)
4. 바울의 인간론
바울의 인간론은 그의 사상의 일부분이며, 그의 기독론에 부속되는 것이다.
이유인즉 바울의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서 만이 인생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기독교 사상은 형이상학적 사변이나 철학적 논증이 아니라,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위에서
거기에 기초를 두고, 모든 일을 하면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 라고 하였다.
바울의 기독론은 다른 사도들과 같지 않다.
다른 사도들은 유대교적인 메시야로서의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바울의 것은 다메석에서 본 그리스도를 중심하면서,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속에 정립되어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창조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A. 인간의 주조적 양면성
바울은 인간의 내적인 성질과 외적인 성질을 말함으로 일종의 인간론적 이원론을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또는 "겉 사람은 부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하였으며 "그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하였다.
(롬7:22; 고후4:16; 엡3:16.)
이러한 바울의 사고 방식은 헬라주의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 증거라고 혹자는 역설하고 있으나, 그러나 엄격히
히브리적 문맥 속에도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①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하였으며,
②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창2:7; 욥33:4.)
바울은 이와같이 인간의 구조적 이분설을 인정하면서도 구조적 요소의 내적 본질에서 하나를 구성하는 인간의 인격의
근본적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다. (엡1:9-10, 4:4-6; 고전6:17, 15:44)
B. 인간의 육신과 영
바울은 인간의 육신에 관하여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의 견지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몸은 가장 고귀하고 위대하고 순결한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그러한 일들을 위해서 지어졌다했다.
(롬1:19-20 (참고 창1:28) 윌리암 바클레이, [바울신학개론], 박문재 옮김, p.168.)
그러나 인간의 몸은 경험적으로나 실제 생활에서나 죄로 인도하며 죄에 매인 생활을 하게 한다.
이러한 약한 것들은 그리스도 없는 인간의 성품에 타고난 것이며, 이렇게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얼마나 오류를 범하기 쉽고, 또 얼마나 죄스러운가를 말해준다.
유혹 앞에서 아무런 힘도 못 쓰고 넘어지고 마는 것이 그리스도 없는 인간의 성품이다.
유혹이 올 때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넘어질 뿐 아니라 죄에게도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했다.
(William Barclay. The Mind of St. 박문재역, [바울신학 개론],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pp.168-169.)
또한 바울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했다.(롬8:12-13.)
그의 말대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은 육체대로 살 필요가 없다.
이제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우리는 옛 사람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새 사람에 대하여는
산 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육체를 따라 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며, 따라서 우리가 이제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고후5:13-16; 갈5:16-17 24-25 (참고 벧전4:1-2).)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2:20; 빌1:2021; 롬14:7-8.)
우리의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 지배를 받을 때는 죄의 재료였던 본능, 열정, 감정, 욕구들이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될
때는 선을 위한 재료들이 된다. (롬8:28.)
바울은 이와 같이 인간의 육적 부분과 영적 부분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구조적 두 측면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완성을 바라고 또한 믿었다.
그는 이 구조적 두 부분의 완전 연합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만이 가능함을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4 5:10-11.)
또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였으며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후5:17; 고전6:17.) 하였다.
바울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았으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육과 영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속에 창조되어 한 인격을 이루도록 되어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피조물인 것이다.
(엡1:3-6; 고전3:16 6:19 (참고 창1:27-28 2:7).)
그러므로 인간의 육과 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바쳐져야 한다.(롬15:5-6; 고전6:20 10:31; 빌1:20.)
인간은 전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보다 완전히 체험하게 된다.
(롬8:20-25; 고전15:35-49; 살전5:19-24.)
이와같이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또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간다."고 한다.
바로 인간의 몸은 "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성령의 전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 하였다.(엡2:21-22; 고전6:19-20 3:17.)
다시 말해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헤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데 있다." 하였다.(엡1:4 1:6)
이와같이 바울의 인간에 대한 신학사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받으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예정 섭리임을 강조하였다.
5. 바울의 기독론(그리스도론)
바울의 메시지의 기본 요지인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인간사 속에서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안에 두고 있다.
A.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 인간의 삶을
취하셨다는 것이다.(갈4:4 (참고 요1:14-18))
이것이 우리가 성육신이라고 부르는 교리이다.
바울은 성육신을 두가지 면에서 인식했다.
1) 성부 편에서의 성육신 인식
바울에게 성육신은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모든 사람이 입고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롬8:3; 갈4:4-5 (참고 요1:14))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시며,(롬5:8, 8:39 (참고 요일4:9).)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고후5:19; 골1:19-20 (참고 요일4:10).)
그의 은사는 말할 수 없는 은사이다.(엡2:4-5 (참고 요1:16-18; 약1:17).)
그와 같은 사랑의 행동 즉, 성육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상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행동이었다.
2) 성자 편에서의 성육신 인식
여기서 바울은 그만이 볼 수 있는 독특한 면에서 성육신을 이해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땅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영원 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시기 위해 무엇인가 고귀한 것을 포기했다고 믿었다.
"그는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고후 9:8) 이라고 말함은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예정되었으며, 그 출발이 영원 전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엡1:4-5; 딤후1:9.)
바울의 이러한 사상이 빌립보서 2장 5-15절에 완전하게 나타나 있다.
거기서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권한을 갖고 계시면서도 그 권한을 포기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인간이 되신 점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복종에 대해 말한다.
예수는 권세와 능력과 만물을 다스릴 왕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러나 그는 왕이 아니라 종으로 세상에 왔다.
그는 명령하러 온것이 아니라 도리어 순종하려 왔다.
그는 죽음에 복종하였다.(롬5:19; 히5:8 (참고 마20:28).)
그의 죽음이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었다.(빌2:8 (참고 마27:38-50; 막15:25-37).)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인간들을 위해서 즉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바울은 이 성육신의 실제성을 여러번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 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보았다.
또한 로마서 1장 3절에서 예수께서 어떻게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와같이 예수께서 실제로 육신을 입으심으로 후손이 되었다는 사실이 로마서 맨 처음에 나온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8장 3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낸 사실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실제성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와 요한서신에서도 볼 수 있다.(눅1:26-31 2:10-12; 요일4:2-3.)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로 보았다.
또 그는 성육신을 창세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시작이라고 보았다.(엡1:3-12.)
바울에게 예수님의 인성은 대단히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의해서만큼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얻게 되는 구원의 내용이 많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볼 때, 그리스도의 삶은 구원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만큼이나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였다.
왜냐하면 이는 바울이 쓴 가장 어려운 내용들 중 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구원의 사역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이라고 하는 이 사상은 바울의 서신가운데 주로 두 곳에 나온다.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는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생명의 능력사상이 가장 충만하게 나타난 곳은 로마서 5장 12-21절이다.
이 두서신의 구절들의 기본 사상은 로마서 5장 19절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 구절의 요지는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바는 모든 사람들이 아담이 범한 동일한 형태의 죄를 범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아담으로부터 어떤 죄를 짓는 성향을 물려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바는, 모든 인간이 아담 안에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아담이 죄를 범했다는 그 사실이 모든 사람들을 죄인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아담안에서 범죄했다는 이 사상으로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죄와 관련되어 있다.
즉 아담이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들도 죄인이 되었다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이를 증거하였다.
바울의 논증 가운데는 확실한 기본적인 단계들이 있다.
① 바울의 논증의 기본은 '죽음은' 죄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죽음은 죄로 인해 왔다는 것이다.(롬 5:12 6:20-21,23.)
죄가 없었다면 죽음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② 아담은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 곧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그것으로 아담은 하나님 앞에 범죄했고, 또 그 때문에 죽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롬5:12 6:23 (참고 창2:16-17 3:17-19, 히9:27))
③ 그러나, 바울은 아담의 이 특별한 죄 안에서 모든 사람들도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 이전에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었다."고 하여 로마서 5장 13-14절에 논증하였다.
④ 그러면 왜 율법도 없었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는데 사람이 죽어야 했나, 하는 것이다.
그 답변은 그들이 아담 안에서 범죄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담의 죄에 연류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했다 하였다.(롬5:17-21 6:12.)
바울의 논증의 요지는 율법이 존재하기 전, 따라서 죄가 성립될 수 있기 전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야 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온전한 의와 온전한 순종을 드렸다.
그래서 아담의 죄안에 연관되여 있던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온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악하고 끝없이 계속되는
죄와 죽음의 결박 속에서 해방케하였다.(롬8:1-2; 히5:8-9.)
즉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죄 안에서 죄인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서 의로운 자 되게 하였다.
이와같은 바울의 논증 가운데는 영원한 진리가 내재해 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자유로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죄로 인한 사망과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인이 의인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롬3:23-24; 갈3:16; 빌3:9.)
이로 볼 때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이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며,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의인됨을 강조하였다.
B.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의 끊임없이 계속되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본질적인 중심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고린도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내가 너희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했으며, 또 갈리디아 교인들에게도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다.(고전1:23 2:2; 갈6:14.)
이와 같이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확실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의 아름다운 말로 가르치지 않았으며," 또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가 그들 보는 앞에 밝히 계시되었는데도 어찌하여 그들이 실족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고전1:17 2:1; 갈3:1.)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자체에 설복시키는 능력이 있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놓인 장벽들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확신했다.(고전1:18; 엡2:13-14; 골2:14-15.)
바울은 자신의 사명의 최우선적인 임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대해서 어떤 꾸미는 말 없이 그냥 사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어떤 진리를 발견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에 관해서" 기록했다.
또한 그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살전 5:10; 엡5:25.)
십자가의 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구속의 사상은 바울의 신학 사상 가운데 긴밀하고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 사실은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빌3:20.) 그가 말한 한 간략한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5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다.
이 말씀 속에는 두개의 사상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율법주의적인 안목에서 건지시고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세력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함을 보이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②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있는 그들이 당해야 할 형벌들에서 구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 이 두개의 요소를 함께 묶어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여기서 구속이란 인생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별에서 용서와 은혜를 입는 것을 말한다.
이와같은 자유함을 성취한 것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었다.
바울은 거듭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죄와 연관시킨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고전15:3.)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두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또 그는 로마서에서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신 우리 주 예수에 관하여 이야기했으며"
또한 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한다.(갈1:4; 롬4:25, 5:6,8.)
이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행하신 크고 기본적인 사역은 인간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일이었다는
사실과, 또 그 결과 그의 공생애와 특히 그의 죽으심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잃었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바울의 사상을 생각하는 데에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희생"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으며,
또 에베소서 5장 2절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했다.
이 보다 더 바울사상 전체에 대한 열쇠이자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한 구절을 바울이 쓴 서신들 가운데 찾을 수 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이 바로 그 구절인데 거기서 바울은 이와 같이 말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이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받은 것을 기념한 아주 유명한 이스라엘의 절기였다. 유월절
이야기의 진수는 그 이름 자체에 있다. 영원토록 간직될 유월절의 진수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그 집의 가족들을
죽음의 형벌로부터 구출한 것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바울의 사상 가운데 이와같은 사상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들을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받게 될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바울에게도 과연 그랬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가장 실제적인 의미에서 인간들을 위한 하나의
희생물이 된다. 이 희생이야말로, 인간들을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혼의 죽음에서 건지시는 희생이었다.
바울은 이 사상을 뒷받침하며 강조하는 진술을 두차례 이상 했다.
①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는 진술과
② 고린도후서 5장 21절의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인간들의 죄와 또한 바울 자신의 죄를 위한 최상의 희생제물이 됨을 알았다.
이제 바울이 사용한 모든 표상들을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① 법앞에서 취한 표상으로 "칭의"가 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그가 마치 선인이었던 것처럼 대하신다. 그러나 죄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도덕적인 혼란이 생긴다. 따라서 마땅히
받아야 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누군가가 치러야 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바울이 말한 대로 "이제
우리가 그의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롬3:25-26 5:9; 고후5:21.)
② 우정에서 취한 표상으로 "화목"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행실이 깨끗하거나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닌 한, 아무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래 속성상 흠없이 정결하고 거룩하여
죄인으로서는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러면 누군가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 바울은 말한다.(롬5:10-11; 딤전2:5; 골1:21-22.)
③ 노예에게서 취한 표상으로 "구속, 해방"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출받아야 한다. 그러나 노예의
세계에서 노예인 본인이 몸값을 치르지 않고는 해방될 수 없다. 혹 자비가 많은 사람이 그를 대신해서 몸값을 치르면 된다.
인간의 노예 해방은 반드시 그의 몸값을 치러야만 한다. 죄많은 인간이 그 죄에서 해방되려면, 누군가가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희생을 해야 하는 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바울은 말한다.(갈3:13; 롬5:8; 고전7:23-24; 롬14:8.)
④ 가정에서 취한 표상 중 "양자"삼음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 법에서도 양자로 입적하려면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새로운 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가 자격을 갖추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말한다.(롬8:15; 갈4:53:25.)
⑤ 희생으로부터 취한 표상으로 "속죄"라는 것이 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죄를 지으면 참회의 표시이자 증거를 하기
위해 소나 양을 희생시켰다. 그러나 바울의 경험으로는 소나 양같은 짐승을 희생시켜 죄를 대속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러한 희생을 마땅히 찾아야 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한 희생이 되어서 그러한 희생으로 인간의 죄를 속죄하셨다고 바울은 말한다.
(엡1:7; 히9:12 (참고 벨전1:18-19).)
⑥ 바울이 사용한 마지막 표상이 있다. 그것은 바울의 마음에 매우 가깝게 있던 표상이다. 그것은 "회계(계산)"을 통한
표상이다. 바울의 사상은 자기 계산에 하나님과 균형을 맞출만한 사람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도저히 지불 능력이 없을 정도의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안에서 그의 빚은 면제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빚의 댓가로 그에게 돌려진다. 이로서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의로 옷입게 된다 한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힘이나 혹은 우리가 노력함으로 해낼 수 있는 자신의
자격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앞과 그분의 가족 앞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역사를 보았다.
또 바울이 본 이 하나님의 역사란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죄인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일을 가능케
하셨다고 말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도는 바울신학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한 바울의 복음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십자가의 도는 화목하는 도요, 하나님의 아들되는 도요, 구원받는 도요, 복음이다.
(고전1:18; 롬1:16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이심 - 고전1:24).)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우리가 자든지 깨든지 함께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살전5:10; 갈2:20 5:24; 고후5:15.)
C. 부활하신 그리스도
바울이 쓴 서신과 사상에서 그의 강조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희생적인 죽으심과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다.
부활사상이 어떻게 바울 사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는가는, 그가 데살로니가후서와 빌레몬서를 제외한 그의 모든
서신서에서 부활에 대해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고, 또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 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하는 그의 말 첫마디도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였다.
또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롬6:4 (참고 7:4); 고전6:14 (참고 고후13:4); 갈1:1; 엡1:20.)
바울은 또한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이와 같이 전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골2:12.) 이라고 했으며,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관한
가장 풍부한 교훈을 하고 있다.
그는 우선 무엇보다 부활에 관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그의 첫 마디 말은 이러하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노니,"(고전 15:3)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그는 교회의 표준이 되는 가르침에 관해서 전했다.
이는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터무니없는 전개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교회의 초창기부터 교회 안에 구체적으로 있었던 것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러한 전승에 대한 증거와 관련해서 바울은 몇 가지 사실을 더욱 첨가해서 전하고 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내놓은 증거이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이신 실례들을 명단으로 나열한 뒤에 이렇게 말한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4-8.)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받아드려야 했던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직접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경험이 있는 사건이었으며, 또 그가 목격자로서 증언할 수 있는 사건이었으며,
또한 그의 증거는 직접적인 것이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행위였다 한다.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예수를 일으키셨다는 것이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산물이었으며, 하나님이 친히 하신 행위였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서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했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불멸의 능력에 대한 완벽한 증거였다.
또한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최종적인 증거였다.
그는 로마서 1장 4절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말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은 오실 메시야는 영광과 권세와 능력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할 왕으로 오실 분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메시야와 마주 대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야관과는 모든 면에서 거리가 먼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그 메시야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역사가 필요했다.
그들에게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확신시키는 한 가지 일이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들이 꿈꾸던 사상을 초월한 승리요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부활하신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강조하였다.
실례를 보면 사도행전 13장 14-43절에 바울이 바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 회랑에서 설교한 내용에 대해서 누구가
진술하고 있는 기사가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 바울이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들면서 예수의 메시야 되심에 관해서 유대인들을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쓴 서신이 바로 히브리서이다.
부활의 그리스도를 온전한 대제사장으로 여기는 사상은 히브리서의 특징이 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는 그 사상을 최소한 한번 사용했다.
로마서 8장 27절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중재 곧 중보의 기도를 하시는
것에 대해서 기록했다.
또한 로마서 8장 34절에서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했다.
바울 사상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사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재판장으로 보는 사상이라 하겠다.
그 사상은 로마서 14장 9, 10절에서 볼 수 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서리라."
한 때 인간들이 재판석에 앉아서 신문을 하고 또 인간들에게 정죄를 받으신 바 있는 바로 그 예수님이 모든 사람이
나아가 그의 심판석 앞에서야 할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라 했다.
바울의 사상중에 매우 깊게 뿌리박혀 있고 그가 소중이 여기는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부활의 능력이라는
사상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자신의 삶의 최종 목표들 가운데 하나를 밝히면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알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에베소서 1장 19-20절에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에 관해 말하기를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
역사하신 그 능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리스도인이 영위할 새생활과 연관시키며 또 그리스도인을 옷입히는 새로운 선행과
연관시켰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했다.
로마서 7장 4절에서도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자들 가운데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하였으며,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인간적인면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희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하였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 현존하는 능력이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철저한 필연성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15장 14-1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이와 같이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그리스도인을 보증하고 보호하는 위대한 진리로 믿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래와 같은 네가지 위대한 진리들의 보증이 된다.
① 그리스도의 부활은 진리가 거짓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에게
이르렀다. 인간들은 그 진리를 무시하고, 말살하고 파괴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진리를
파괴할 수 없는 것임을 증거하는 최종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
② 또 그것은 선이 악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 하신 선이셨다. 인간의 죄는
그 선을 파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선이 결국에는 그것을 대항하고 있는 모든 악을 반드시 정복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③ 또 그것은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단지 한번만에 멸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생명을 멸할 수 없는 것임을 증거하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④ 또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랑이 미움보다 강함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영원토록 파멸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들의 모든
미움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미움에 대항을 모두 좌절시킨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상 있었던 단순한 사건이 아니며, 하나의 신학적 교리도 아니다. 그 사건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사실이다. 이 사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체험한 사실을 입증한다. 바울의
이러한 윤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살아계셔서 현존하는 주님의 역사인 성령을 통해서 입증되어 있다.(롬6:1-9 8:1-2.)
6. 바울의 성령론
성령에 대하여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으로 권능을 받았던 것처럼 그도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할 때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였다.
이는 주께서 택한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며, 실증이였다.
(성령은 주님의 약속, 고후1:20-22 (참고 눅24:49, 행1:4-5).)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성령은 하나님의 선물, 행2:38; 롬3:15 (참고 약1:17, 요4:10).) 확신한다.
또한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 생기게 하는 기독교 복음의 전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임하신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를 입증하여 로마서 10장 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였으며, 갈라디아서 3장 2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이와같이 바울은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서 성령을 받음을 입증했다.
그러므로 성령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가 보내신 복음의 메시지에 대하여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아
드릴때 그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신다 하였다.(믿음으로 성령받음 엡1:13; 갈3:2 (참고 롬1:16, 고전1:18).)
이러한 성령의 실상에 대해서 바울은 성령이란 하나님의 대언자로 알았고, 또한 성령은 교회의 영적 평안과 발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았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의 약속에 따라 성령은 그리스도의 승천 후 영원한 대언자로서 몸된 교회의 상징이 되었다.
(성령은 몸된 교회 상징 엡2:22 (참고 요14:26 15:26, 요일2:1).)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성령은 하나님의 영(능력) 롬8:9-11;
고후3:17 (참고 요6:63, 3:24); 고전1:24.)
이와같이 복음안에서 바울과 같이 성령의 본질과 임재 및 그 직분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한 사람은 없다.
바울은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에 대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A. 성령의 인격성
성령의 인격성은 믿는 자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는 역사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즉 성령은 택함 받은 자가 소유해야 할 필연적인 인격이다.
성령은 모든 때와 모든 방법으로 보혜사로 역사하신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라" 하였으며, 요한일서 2장 1절에는 "보혜사는 대언자라" 하였다.
이로 볼 때 성령은 계시하는 데에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사실이다.
즉 성령은 외견상으로는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시는 대행자이며 내면적으로 성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는 인격자요 능력이 되며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하고, 이해하도록 마음을 밝히는
하나님의 중보자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깨달아 알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며, 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 아들 되도록
인도하는 분도 성령이시다.(성령의 인도 롬5:5 8:14 8:27.)
뿐만 아니라,이와같이 성령은 허락한 자를 가르치며, 하나님의 깊은 것도 통달하게 하신다.(성령의 가르침 고전2:1310.)
또한 성령은 택하신 자의 행할것을 지시하신다.(성령의 지시 행9:3-613:2-3,16:6-7.)
또한 성령은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며,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성령의 증거 롬8:26-27 8:16; 갈4:6.)
이와같은 바울의 많은 서신들을 통해 볼 때, 바울은 성령을 온전히 하나님의 인격으로 받아 드리고 있으며, 또한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유해야 할 인격임을 주장하였다.
(성령은 하나님의 인격 고전6:17; 고후1:21-22; 엡4:30; 갈6:8.)
B. 성령의 신성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바울은 성령의 신성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이란
구절들을 성령으로 설명하였다.(성령의 신성 행28:25 (참고 사6:5-10).)
고린도후서 3:17 에서 "주는 영이시니" 그 본질, 목적, 권능에 있어 성령은 그리스도와 동일시 되고 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롬8:9-11 (참고 요6:63 12:49-50, 요일5:7, 요17:17).)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설립 자체가 성령의 신성임을 증명하고 가르쳤다.
(성령과 교회 고전3:16 6:19, 엡3:10-11; 딤전3:15.)
이러한 성령의 신성은 성령의 인격성을 주관 역사하신다고 믿었다.
(성령의 역사는 고전12:4-7; 롬8:9-10; 고전2:10, 12-14; 갈5:22-23; 고후3:17-18; 엡2:22 3:16.)
C. 성령의 동등성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등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삼위로 구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삼위는 일체임을 강조하고 있다.(삼위일체인 성령 엡4:4-6; 고후13:13.)
이와같이 바울의 주장은 그이 교리와 신학적 기초를 그리스도 안에 형성하고 있으며, 그의 교리가 인간을 죄에서
구속시키는 게획과 개념을 주관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20-22절에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성전이 되어가며, 또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감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은
① 영적 연합이며 한 성령의 머리와 지체의 연합이며, 실재적인 것으로 우리는 예수의 몸에 지체인 것이다.
(영적 연합 고전12:12-13 롬12:5; 엡4:15-16.)
② 신비적인 관계이며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이요, 또한 성령의 전이다.(성령의 전 고전3:16 6:19.)
항상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를 믿고,(내 안에 예수 갈2:20; 롬8:1-29; 고후13:5.) 우리의 생활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되어,(그리스도로 옷 입음 롬13:14; 갈3:27; 골3:10.)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 고후5:17; 엡4:23-24, 영적인 몸 고전15:44-49.)
③ 영원한 관계이다. 한마디로 이 영원한 관계는 생명의 원천을 이루는 연합으로서,(영원한 관계 롬8:38-39; 히5:8-9
(참고 요일2:24-25).)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의해 보호된 모든 은혜에 동참하여 영광스러운 부활에까지
동참할 수 있는 연합 관계이다.(연합 관계 롬6:2-10; 고후4:10-11.)
이 연합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의 인간의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 계속 역사할 때
구원의 성취를 얻게된다.(구원의 성취 엡2:8-10 3:16-19 (참고 요1:12-14, 마10:22 24:13).)
7. 바울의 구원론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구원의 교리를 제시하고 있다.
죄악 속에 사는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A. 구원의 필요성과 죄
바울 신학사상에 있어서 죄의 정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진화 과정의 결핍, 주위 환경의 영향, 교육, 기타 지상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죄악의 만연과 그 위력 및 도덕적
비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선을 알지 못하고는 악을 설명할 수 없다.
즉 선의 반대가 악이며 죄이다.
바울은 죄에 대한 실체와 본성을 정의하여 그 기준을 만물의 창조 주이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불순종할
때 이를 죄라 정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