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는 이 영성 회복의 과정, 즉 성화의 과정에서 때로는 신기한 은사들을 베푸시기도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 언급된 방언, 통역, 예언, 병 고침, 영 분별, 투시(透視) 등의 현상을 체험하거나 행할 수 있게 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현상을 수반하는 은사들을 영성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은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다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은사를 받지 못 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은사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성과 은사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서 영성과 은사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자칫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기가 쉬운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처럼 특별한 은사들은 영성 실현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영성의 기준을 이러한 현상에만 묶어두는 것은 영성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된다. 성령이 아니라 악령들도 이러한 현상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악령도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였고, 물이 피가 되게 했으며, 예언을 하게 하기도 하고,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생겨나게도 했다. 지금도 악신에 붙들린 사람이나 심령술사들은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서 영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에게서 예외가 없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는, 죄를 멀리 하고 의인된 새 사람의 모습을 입어 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은 성화의 수준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성화의 수준이 높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영성이 풍성한 사람이다.
영성의 완성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완전한 영성에 이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육체와 정신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 주님께서 재림하여 사탄을 무저갱에 가두시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사탄의 활동을 허용하여 우리의 완전한 영성 회복을 방해하도록 묵인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영성의 완성은 죽음과 동시 또는 죽음 직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성도는 죽음과 동시에 죄와 관련된 인간의 모든 불완전함과 사탄의 사악한 영향에서부터 완전하게 해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신령하신 성부 하나님, 그리고 완전한 영성의 소유자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천국의 행복은 완전한 영성의 소유자, 즉 온전히 거룩하여진 사람에게만 허락이 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영성의 완성이 죽음과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을, 우리가 지금은 그 때를 소극적으로 기다리고 있기만 해도 좋다는 의미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적극적으로 죽기를 연습하여, 영성의 완성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연습은 영성의 실현에 매우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명령하면서,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따름이지만 경건에 이르기를 위한 연습에는 금생과 내생에 주어질 약속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딤전 4:7~8). 이런 이유 때문에 영성은 종종 금욕주의나 자기부정의 고행과도 연결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적 의미의 영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어 자기 안에서 내주하시는 성령과 더불어서 가지는 모든 관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의미의 영성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피조물을 잘 다스리며, 이웃과 화목을 이루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사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서 참된 영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참된 영성을 회복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완전한 영성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완전한 영성을 회복하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실제적인 역사를 하신다. 하지만 영성의 완성은 죽음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지만 말고,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 안에서 날마다 죽기를 연습함으로써 영성의 풍성한 수준에 도달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분명히,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이 없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예배를 할 수 있는 영성 있는 성도가 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