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과 저자
1) 제목
본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에즈라'로 불렀다. 그러나 에스라 2장의 내용이 느헤미아 7장에서 반복되며, 이 두 책이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두 책은 별개의 것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헬라어 칠십인역에서는 본 서를 '에스라1서'라고 했으며, 라틴어 벌게이트역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에스라'로 칭하였다. 그러므로 본 서의 제목은 본 서의 저자인 동시에 중심 인물인 제사장 에스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 저자
에스라서의 저자는 지금까지 학사인 에스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에스라서에서 저자에 관한 정확한 언급이 없고, 문장도 1인칭과 3인칭이 섞여서 나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서로 다른 몇 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탈무드의 기록에는 본 서의 저자를 에스라로 밝히고 있다.
또한 문장의 주어가 바뀌는 경우는 저자가 한 사람일 때도 나타나는 것으로서 고대 바벨론 문서나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에스라가 자신을 가리켜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 (스7:6)라고 부르는 것이 에스라 저작설에 대해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이러한 묘사도 역사 문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오히려 에스라의 지식과 그 심오한 사상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본 서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역대기와 비슷한 문체로 기록되었으며, 사건 묘사의 치밀성으로 보아서도 에스라의 저작인 것이 유력하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와 역대기는 그 시대적 배경이 연속적이어서 기록 연대상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에스라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① 후기 연대설: 에스라서를 느헤미야서보다 더 늦게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로서 비평주의적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모빙켈(Mowin-ckel)은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주전 200년경으로 잡았으며, 토레이(Torrey)는 주전 25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초의 비평주의자 학자들은 느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임을 내세워 주전 30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② 전기 연대설: 이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은 느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얏두아와는 동명 이인이라고 주장하며 후기 연대설을 반대한다. 에스라서는 느헤미야의 귀국 후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에스라서에서는 전기 연대설을 지지하며, 에스라가 느헤미야 때의 대제사장인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간 기록을(스10:6) 통해 볼 때, 에스라서는 에스라 생애 말기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2) 기록 목적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거의 같은 시기의 포로귀환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라나 느헤미야의 기록 목적이 유사하다.
에스라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 포로귀환 이후에 벌어진 성전 건축의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둘째, 성전 건축과 같은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에스라 3장에 나오는 성전의 기초 건축을 위한 백성들의 일치 단결(1절), 방해 세력에 맞서는 용기(3절), 자발적인 예물 헌납(4-7절), 조직적인 역할 분담(8, 9절) 등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셋째,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 기간과 포로귀환 그리고 성전 재건을 통해서 드러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포착될 수 없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3. 주제 및 특징과 구성
1) 주제 및 특성
본 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성전 재건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특징으로는 먼저 포로 후기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데, 느헤미야와 더불어 포로귀환 이후의 사건을 다루는 구약의 마지막 역사서이다. 또한 역대기와 느헤미야서와 유사하게 이스라엘 전통 종교의 회복을 염원하는 제사장직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와 신앙의 구심점인 성전이 재건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아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에스라서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가 강조되고 있다. 언약은 족장 시대 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포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언약 백성들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이 강조되고 있다.
2) 구성
예스라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의 조서로부터 시작된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고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약 5만 명에 달하는 귀환민들이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본 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반부(스 1-6장)와 후반부(스 7-10장)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에스라 이전의 사실에 관한 내용으로 주로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일어난 제1차 귀환과 귀환자의 명단(스1:1-2:70) 그리고 성전 재건의 시작과 중단, 재개와 완성(스 3:1-6-22)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반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성전 재건이다. 후반부는 에스라 이후의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는 약58년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는 등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해 갔다. 이런 시점에서 에스라 인도하의 제2차 귀환(스7:1-8:36)이 이루어졌고 그후 에스라의 종교개혁(스9:1-10:44)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이 완성되어 갔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1. 에스라서의 저작 목적
에스라의 중요성은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저작목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서는 히브리 사람들이 70년동안이나 포로로 잡혀 있다가 막 해방되려는 시기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의 고레스 왕을 세우셨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께 불복종하고 사악하므로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벌을 받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바벨론 역시 잔악하고 사악하므로 패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렘25:11-25).
이사야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백 년 이상 이전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사로잡혀 포로가 되고, 그 잔악하고 사악한 나라도 계속해서 패망할 것과(사13:19, 20),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고레스에 대해서(사44:28) 예언했다. 따라서 예스라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민족들을 어떻게 주관하시는가를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란 B. C. 605년에 처음 유대인들이 사로잡혀 갔던 때로부터 B. C. 538년 고레스가 칙령을 발하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돌아온 때까지를 말한다.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서를 통해서도 에스라서의 연구에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며, 제1진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운명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 두 권은 모두 귀환 초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최초의 총독인 스룹바벨 통치하에서의 성전 재건을 다루고 있다.
2. 저자와 저작 연대
에스라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역대기뿐만 아니라 에스라서의 저자를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라고 말한다. 에스라는 서기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학자였으며 모세 율법의 교사였다. 그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2진의 귀환자들 혹은 대표관들과 함께 B. C. 457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최근 학자들 사이의 지배적인 견해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혹은 연대기 편자가 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의 3부작내용을 참조하고 그외의 다른 많은 자료들을 모아서 역대기-에스라- 느헤미야 역사서의 한 부분으로서 에스라서를 편집하여 썼다는 것이다.
에스라서의 일부분은 이스라엘의 동쪽과 북동쪽에 인접한 나라들에 의해 사용되던 아람어로 씌어졌는데, 고대의 중근동에서는 외교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에스라서는 주로 일반적인 기록과 공식적인 문서의 필사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연결된 역사서와 함께 아람어로 되어 있다. 또한 유대 관리들이 바사 왕에게 보낸 서신이나 그 관리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왕의 답신과 칙서도 아람어로 되어 있다. 여러 가지의 역사적인 기록과 기자 작신이 쓴 연결된 역사서에서 취한 유다의 극적인 역사를 포함하고 있는 에스라의 나머지 부분들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다. 에스라의 특징은 역사가들이 그것은 에스라의 개인적인 전기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점이며, 또한 그것은 그 저자가 원본에서와 같이 1인칭 대명사인 '나'와 '우리'로 썼다는 것이다. 그 책의 나머지 부분은 주로 3인칭으로 되어 있다. 에스라서는 책 속에 있는 것을 근거하여 볼 때 제사장이나 서기관인 에스라가 인도한 제2진의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B. C. 457년 이후에 씌어졌음이 틀림없다. 더욱이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가 하나로 연결된 역사서라고 가정할 때 그 저작 시기는 더욱 늦어진다. 즉 연대기에 언급된 다리오 왕(Darius Codomannus B. C. 335-330)과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가 언급한 알렉 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 C. 336-323)의 시대만큼이나 늦게 저작되었다. 그렇지만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에 있는 역사와 관련된 주요 사건을 볼 때 유대인의 역사적인 에스라서는 그 저작 시기를 약 B. C. 432년까지 거슬러 생각할 수 있다.
3. 에스라의 특징
① 역대기서, 이스라서, 느헤미야서는 서로 연결되어 이스라엘 왕정 초기부터 왕정의 몰락과 회복의 전과정을 파노라마(Panorama)식으로 개관한 책이다.
② 선민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야기된 포로 생활을 하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귀환하여 새로운 신앙 공동체로 회복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③ 역대기가 솔로몬 성전 건축과 파괴를 줄거리로 진행된 반면, 에스라서는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저자인 제사장 출신 에스라의 집필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